-미실의난-
미실이란 인물은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에는 등장하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불확실한 인물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최측근인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미리 눈치채고 있던 진평왕은 즉시 반란군을 토벌하고 칠숙과 석품, 그리고 미실을 처형한다.
일찍부터 덕만을 왕으로 점찍고 있던 진평왕이 덕만을 다음 왕위에 올리기위해 미실,칠숙,석품등 반대세력을 모조리 제거한 것으로 해석된다.



-칠숙석품의난-
칠숙과 석품은 각각 아찬과 이찬 신분의 화랑이엿다.
그들은 낮은 신분에 불만을 품고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새우기위해 선덕여왕 즉위 1년전에 반란을 일으킨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이들은 미실을 왕위에 올리기위해 반란에 앞장선것으로 나오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단지 권력을 잡기위해 반란을 일으킨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평왕은 이를 미리 알아차리고 즉시 이들의 반란을 토벌한다.
칠숙은 그 자리에서 잡혀 기시형에 쳐해지고 석품은 백제로 도망갓으나 부인과 자식들이 보고싶어 나무꾼 행세를 하고 신라로 돌아왓다가 붙잡혀서 처형당한다.
당시 진골귀족들의 팽팽한 권력싸움의 틈바구니속에서 비교적 낮은 신분인 칠숙과 석품이 무슨 명분으로 난을 일으켯는지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담염종의난-
비담의 출생에 대해서는 알수없지만 진골귀족으로 기록되어있다.
기록에 의하면 비담은 선덕여왕 즉위에 공을 세워 645년 상대등에 오르게된다.
선덕여왕은 즉위직후 귀족들에 불리한 개혁들을 추진하면서 귀족들과 대립하게된다.
결국 상대등의 신분으로써 귀족들의 중심에 서있었던 비담은 647년 자신의 측근인 염종, 그리고 여러 귀족들과 함께 선덕여왕이 정치를 잘못하고있다는 구실로 비담염종의 난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하는등 신라왕실이 위기를 맞앗지만 김유신과 김춘추에의해 반란은 진압당하고 비담과 염종등 반란에 참여한 자들은 전부 처형당하고 구족이 멸당하엿다.
비담의 반란은 단순한 왕위쟁탈전이 아니라 중앙집권화체제를 수립하려던 왕실세력과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세력 간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