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우리 아빠 죽였지?"
어느 날 한 꼬마 여자 아이가 형사인 아빠가 죽은 채 거실에서 쓰러진 모습을 발견한다. 아빠의 생일 날 아빠를 그렇게 떠나 보내야 했던 아이는 슬픈 표정 없이 그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기만 한다. 이 아이는 이후 15년 동안 아빠를 죽인 범인과의 만남을 고대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이 아이는 괴물이 된다.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는 한 소녀의 아빠를 죽인 범인이 세상 밖으로 나온 날 유사 패턴의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15년 간 살인범을 기다린 소녀가 펼치는 7일 간의 추적 스릴러를 담았다. 심은경이 살인범을 쫓는 소녀 희주를, 김성오는 살인범 기범을, 윤제문은 희주 아빠의 동료이자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대영을 연기한다.
희주와 기범은 각자만의 치밀함으로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희주는 아빠를 떠나보낸 후 경찰서에서 일하며 기범의 행적을 꼼꼼히 추적한다. 기범은 자신이 체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보자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 과정에서 둘 다 자신과 연관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스토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언젠가는 만났어야 할 운명이었기에 이는 두 사람에게 흥미로운 상황일 뿐이다.
이미 희주는 돈 놀음 때문에 아빠를 떠난 엄마를 감금, 폭행하는 남자의 머리를 돌멩이로 때려 눕히고 기범의 제보자마저 끔찍하게 살해할 만큼 거대한 괴물이 돼 있었다. 희주는 점차 자신이 괴물이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옹호한다. 희주는 니체의 명언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부정하며 "신이 죽었기 때문에 괴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악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선한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 역시 정당화한다.
'아빠를 죽인 원수를 향한 복수'라는 이 정형화된 틀 안에서 '널 기다리며'는 심은경이 선사하는 서늘함과 김성오가 전하는 사악함을 번갈아 보여주며 스릴러 장르 특유의 쾌감을 배가시킨다. 일단 두 사람이 펼치는 연기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극에 몰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여기에 윤제문이 주축이 된 형사들의 허술한 수사는 연쇄 살인 시나리오의 연결 고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널 기다리며'의 주인공은 심은경이다. '널 기다리며'는 심은경의 파격 변신을 겉모습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희주는 기범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되새긴다. 스스로 교양수업이라고 지칭하는 이 고뇌는 희주가 기범을 만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여기에 방 안에 빼곡히 붙여진 포스트잇과 스크랩 기사는 희주만의 묘한 세계관을 느끼게 한다. 스릴러이지만 소녀 희주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감성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나 보다.
그간 영화, 드라마에서 발랄한 소녀의 모습으로만 기억됐던 심은경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싶다면 '널 기다리며'가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좀 그 변신이 좀 파격적이어서 놀랄 순 있겠다.
오는 10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