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낚시할 적에 뭣이 걸려 나올지 알고 허나? 그 놈은 낚시를 하는 거여. 뭣이 딸려 나올진 지도 몰랐겄제. 절대… 절대 현혹되지 마소”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에서 박수무당 일광(황정민)은 종구(곽도원)에게 당부한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그러나 정작 ‘곡성’은 관객들의 눈앞에서 미끼를 살랑살랑 흔든다. 그리고 감독이 던진 미끼를 관객들이 무는 순간, 감독은 관객들을 ‘나홍진 월드’로 낚아채 간다.
‘곡성’은 ‘추격자’, ‘황해’를 통해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장을 연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나홍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곡성’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까지 초청돼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곡성’은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발칵 뒤집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는 이 모든 사건이 외지인과 관련 있다는 소문과 의심이 퍼져나가고, 경찰 종구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게다가 종구는 딸 효진(김환희)이 연쇄 사건들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다급해진다. 외지인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고, 급기야 무속인 일광을 불러들이며 이야기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는다.
‘곡성’은 정말 불친절한 영화다. 극 중 수시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과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또한, 캐릭터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해설도 없다. 오히려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허점들을 채우길 바라는 것 같다. 창조주가 목적 없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객들은 불평하지 못한다. 관객들을 현혹해 불평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곡성’의 선봉에서 관객들을 홀리는 건 배우들이다. ‘곡성’을 통해 14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곽도원은 그동안 보여줬던 강한 캐릭터를 내려놨다. 일상의 따분함을 느끼는 평범한 시골 경찰의 모습부터 혼란스러움 속에서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미지의 인물에게 처절하게 덤비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흥행 보증수표가 됐지만, 배우 황정민의 개성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곡성’은 반드시 봐야할 영화다. 황정민의 무서운 집중력과 철저한 준비가 빚어낸 일광의 굿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지인을 연기한 쿠니무라 준과 무명 역의 천우희 또한 그리 많지 않은 장면에서 등장하는 순간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한다. 여기에 종구의 딸, 효진을 연기한 김환희는 배우들마저 혀를 내둘렀을 만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156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유혹했다면,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으로 허구의 이야기 ‘곡성’을 보는 관객들을 홀린다. 나홍진 감독은 미스터리와 혼돈이 깊어지는 극중 상황에 어울리는 영화의 톤과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영화 설정에 부합한 시간과 날씨를 기다렸다. 특히 종구 일행이 산길 국도에서 외지인을 쫓는 추격신은 실제 비가 내리는 날에 맞춰 촬영해야 했기에 계절상 가을에 시작해 겨울에 촬영을 마쳤다. 이뿐만 아니라 촬영 시간과 미술, 소품 등 자연스러운 연출을 최우선으로 두고 완벽을 기했다. 이러한 디테일은 ‘곡성’의 모든 것을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다.
156분의 긴 러닝타임이 끝나면, ‘나홍진 월드’에 초대됐던 관객들은 각자의 소감을 늘어놓게 된다. “어떤 범죄의 피해자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물어볼 때,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더 운명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나홍진 감독의 모티브에 대한 의견부터 샤머니즘과 초자연적 현상, 적그리스도 등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각자의 생각까지 관객들은 각자의 스타일로 감독의 세계를 만끽하면 된다. 단, 낚싯바늘에 걸린 그 충격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관객들의 몫이다.
15세 관람가. 11일 전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