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사랑한, 진짜 이유
    
  첫 만남, 2005년 어느 가을밤이었습니다. 나는 아나운서 지망생 중 한사람으로, 그는 한 방송사의 신입사원으로, 우리는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저 신기해하는 후배들 앞에서 약간은 어색한 듯 보였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좋은 느낌의 사람이라, 집에 돌아와 그의 미니홈피를 훔쳐보았죠. 방송국 입사는 생애 첫 일등이라며 감격해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부럽다…’ 애송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준 선배에게 감사의 쪽지를 보냈습니다. 친절한 답장이 왔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저장’ 버튼을 눌렀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2008년 아나운서 대회에서였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처럼 아나운서들의 송년회에도 ‘주량 배틀’이 있습니다. 그날 나는 그와 함께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쟁시간대 양사 대표 프로그램 MC라는 의미와 함께, 아나운서 지망생 당시의 짧은 인연이 떠올라 괜히 머쓱했죠. 규칙상 마지막 잔은 러브샷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바탕 웃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곧 헤어졌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지난 해 11월, M사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서였습니다. ‘너의 팬을 자처하는 선배가 있는데, 팬으로서 밥이나 한번 먹자’는 거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듣고는 웃음이 났습니다. 참 재밌는 인연의 선배, 친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홍대 한 와인바에서 단 몇 시간 얘기를 나눈 게 전부였습니다. 그후 그는 프로그램 모니터도 해주고, 안부 문자도 보내주었죠. 가끔 데이트 신청을 받긴 했지만, 왠지 조심스러웠습니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정말 좋은 선배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선배님, 2010년엔 정말 가슴 뛰는 한해 보내세요.’
‘하하, 지애씨 같은 사람을 만나야 가슴이 뛰는데 큰일입니다. 이제 정신 차려야죠.’
조금은 부담스러었던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2010년 1월 신년메시지를 끝으로 그는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뜬금없게도 엄마를 통해 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하하. 그와 나, 참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태생적인 운명론자. 인위적인 만남은 절대로 갖지 않는다는 개똥철학(?)으로 여태 소개팅 한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진짜 인연이라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초여름 밤, 모니터를 켜고 예전에 받은 쪽지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2005년 11월에 받은 짤막한 쪽지. 그 사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 차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는 비를 뚫고 내게 달려와 줬습니다. 그 후 드문드문 이어진 몇 번의 조심스러운 만남. 특별한 이벤트도, 화끈한 데이트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주말에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고 성경 이야기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와 결혼을 합니다.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그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그는 그가 진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무언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함께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날, 내게 말했습니다.
“지애야, 그곳에 가면 지애가 좀 불편한 일들이 생길지도 몰라. 지체장애를 가진 분들인데, 몸은 40대지만 지능은 어린아이거든. 혹시나 어쩔 수 없는 본능 때문에 이리저리 만질지도 몰라. 그래도 걱정하거나 당황하지 마. 절대 악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옆에 있어줄게.”
그러나 직접 그런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참 쉽지 않았습니다. 해맑은 얼굴을 한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내 손을 자꾸 만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물끄러미 지켜볼 뿐,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여자 친구만큼, 지적장애인의 인격 역시 소중했던 겁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완전히 믿어도 좋은 사람임을.

  3개월도 안되어 결혼을 결정한 내게 누군가는 신중하지 못하다 말합니다.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 기다려보면 더 근사한 혼처가 있지 않겠느냐 염려해주는 이도 있습니다. 혹시 그가 숨겨진 재력가이거나 결혼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를 만든 게 아니냐고 음흉한 미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였다면 나는 절대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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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언제나 뜨거울 수만은 없대. 활활 타오르다 보면 결국 그 불에 타죽게 되어있거든. 우리는 은은한 잔불로 오래 오래 서로의 곁에 있어주자.”

  오랜 시간 은은하게 이어진 그와의 만남 속에서 나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만남의 시간이 아닌, 교감의 깊이임을. 억지로 꾸며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 내가 그를 운명이라 느낀 이유입니다. 가슴 뛰며 시작한 2010년, 더 큰 사랑을 배우고 나누기 위해 용기 있게 운명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그 길을 함께 걸을 사람이 생겼습니다.





미니홈피에 직접 쓰신 글이라네요.
두분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