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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뮤즈’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블랙핑크의 로제(Rosé)가 2020년대 생 로랑의 뮤즈다. 얼마 전 솔로 앨범을 낸 로제는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길 희망했고, 바카렐로는 로제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흑백의 적막을 뚫고 나오는 ‘로제’라는 무한한 색채. 그리고 생 로랑의 과거를 포용하면서도 늘 모던함을 추구하는 안토니 바카렐로. <더블유>가 포착한 고요함 속의 파워풀한 로제와 바카렐로와의 특별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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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앓이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인 건 처음이었다. ‘Why’d you have to hit and run me, now I’m all alone and crying ugly’(말해봐, 왜 그렇게 도망치듯 날 떠났어? 이제 나 홀로 울고 있잖아). 한국의 슈퍼스타 로제가 밝은 녹색 깃털로 치장한 채 부른 노래 ‘Gone’의 가사다. 수많은 이들이 로제를 핫한 4인조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로 알지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올해 3월 공개된 그녀의 첫 솔로 뮤직비디오 ‘Gone’에서의 모습이다. 이 뮤직비디오의 또 다른 장면에서 그녀는 베개를 때리고, 이번에는 녹색이 아닌 짙은 푸른빛의 깃털에 휘감겨 있다. 어쩌면 깃털들이 사랑의 아픔을 치유해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면 바로 특정한 룩을 떠올려요. 어떤 의상을 입을지, 어떤 느낌으로 촬영할지 말이죠.” 로제가 자신과 멤버들을 대변해 말했다. “우리가 만드는 음악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패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이 점을 가장 먼저 눈여겨본 사람 중 하나는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다. 2019년, 그는 로제를 파리로 초대했다. “생 로랑 패션쇼에서 안토니를 처음 만났어요. 모든 게 혼란스러워지기 전이었죠.” 로제가 팬데믹이 닥치기 전 시간을 회상했다.

“그녀는 미래의 생 로랑 걸입니다. 그녀의 사는 방식, 그녀가 자신의 패션을 주도하는 방식,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식에서 그래요.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존재죠.” 로제를 생 로랑 글로벌 앰배서더로 지목한 안토니 바카렐로의 설명이다. 작년부터 로제는 생 로랑의 새로운 모델로 합류했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그가 어울리던 여성들로 유명한 그 패션 하우스 말이다. 이브 생 로랑을 회상할 때, 그가 자기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기발한 여성들에 둘러싸인 광경 없이 떠올리기란 불가능하다. 베티 카트루(Betty Catroux),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 룰루 드 라 팔레즈(Loulou de la Falaise), 마리나 스키아노(Marina Schiano), 낸 캠프너(Nan Kempner). 이들은 생 로랑의 패션 혁명 전사들이었다. 생 로랑은 이들에게 사파리 재킷과 턱시도 바지를 입히며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한 규범을 철저히 파괴하게끔 했고, 그들은 이를 해냈다.

그 당시 여성들은 현재는 선호되지 않는 용어인 ‘뮤즈’라 불렸다. 그 단어는 협력과 창조적 존중의 고귀한 전통이고, 아득히 먼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안타깝게도 이브 생 로랑의 뮤즈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상당수 사라졌다. 낸 캠프너, 룰루 드 라 팔레즈, 그리고 가장 최근 마리나 스키아노 모두 세상을 떠났다. 키 크고 말수가 적으며 약간 무뚝뚝한 베티 카트루는 다행히도 아직 우리와 함께다. 파리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은 작년, 이브 생 로랑이 그녀를 위해 디자인한 50여 벌의 의상에 헌정하는 쇼를 개최했다. 물론 바카렐로가 그 쇼의 큐레이팅을 맡았다. “베티는 과거의 여성이 아닙니다. 그녀는 항상 현대적이죠.”

바카렐로의 2021 S/S 컬렉션에서 베티의 존재감을 느낀다. 검정 튜닉과 바지, 실크 블라우스, 속이 비치는 베이비돌 원피스, 그리고 사방에 장식된 황새 깃털 등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가장 현대적으로 이브와 1970년대의 향수를 담고 있다. “저는 생 로랑의 작품이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 0에서부터 다시 출발할 겁니다. 저에게 과거는 나쁜 것이 아니에요. 저는 과거를, 넘어서야 할 괴물로 보지 않아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가? 생 로랑의 쇼는 그 의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생 로랑은 반년마다 돌아오는 패션위크 무대에 불참하며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먼저 대응한 브랜드 중 하나다. 바카렐로는 자신의 모델들이 이름 없는 한 사막의 모래언덕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모습을 촬영했다(걱정 마시라, 눈에 보이지 않게 설치된 런웨이가 모델들이 모래 바닥에 빠지는 걸 막아줬으니). 바카렐로의 라이브 쇼는 그 화려함으로 유명하고, 에펠탑을 배경으로 휘황찬란한 효과를 내곤 했다. ‘공중 보건’을 대가로 과거의 연극적 강렬함과 드라마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쓰디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카렐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저는 비디오로 패션쇼를 진행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어요. 제가 초기부터 사용하던 표현 양식이고, 가스파 노에(Gaspar Noé)나 짐 자무시 같은 영화감독들과 제 쇼를 촬영하기도 했는걸요. 물론 ‘Défilé(행렬)’의 감동이 사라지긴 할 겁니다. 백스테이지의 눈물, 뭐 그런 것들요.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자신이 한때 알았던, 혁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요.”

다시 로제와 모던한 오늘날의 뮤즈로 돌아오자, 뮤즈라는 게 지금도 남아 있다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들이란 클럽에서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춤을 추다가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엔 그 여성들이 너무나 바쁘다. 로제와 제니, 지수, 리사는 수년간 트레이닝 생활을 했고, 블랙핑크에 선발되기 위해 동기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다. ‘창의적인 상호 작용.’ 과거 뮤즈라는 ‘직업 요건’ 중 일부였던 이 특징은 이제 훨씬 복잡다단해졌으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가 안토니에게 좋은 뮤즈였으면, 그가 저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면 해요. 안토니와 저는 자주 문자를 나눠요. 그가 우리 사이를 친밀하게 유지하는 데 정말 능하거든요. 제가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인데 안토니도 그 점을 눈치챈 것 같아요.” 바카렐로는 로제가 견고한 생 로랑 아이콘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지금의 생 로랑 여성들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나이대는 더 낮아졌지만, 기질은 그대로예요. 자신감 넘치고 진취적이며 독립적인 기질. 그게 제가 베티를 본 방식이고, 로제를 보는 방식입니다.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인 사람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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