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왜관-세계도시 부산은 초량왜관에서 탄생했다’ 출간

부산의 탄생은 왜관이 있었음으로 해서 가능했다고 보는 최차호 씨의 “초량왜관- 세계도시 부산은 초량왜관에서 탄생했다”가 출간되었다.

부산포에는 470년 동안 왜관이 존재했었다. 그 중 후반기인 1678년(숙종 4) 새띠벌 초량에 왜관을 설치한 이후 200여 년을 이어왔다. 왜관, 그중에서도 초량왜관을 논하지 않고 부산의 역사를 살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동래부의 변방으로 한가롭던 부산항이 오늘날 세계 5대 무역항으로 발전한 것은 초량왜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래서 왜관이 왜 설치가 되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저자가 10여 년 동안 모으고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결과물을 내놓게 됐다.

대마도를 70여 차례 방문하며 자료를 모으고, 각종 고문헌에 파고들어 정리한 이 책은 역사 속에 파묻혀 우리 기억에서도 지워졌던 초량왜관의 재발견이자, 초량왜관의 역사적 가치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초량왜관의 구조, 건축, 구성원의 역할, 운영상의 관례 등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관련자료들을 꼼꼼하게 제시하며 조목조목 짚어내는 모습에서 초량왜관 연구자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초량왜관 건축 공사는 그 유례를 달리 찾아볼 수 없다. 두모포왜관에서는 건물을 수리할 때 왜인들이 주거 공간은 일본식 구조로 만들어 주도록 요청했으나, 구체적인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초량왜관은 기초공사 때부터 조선과 일본이 절충식 건물을 세우는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주거 공간은 일본식, 지붕은 조선식 구조의 조·일 절충식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조·일 절충식 건물은 누수 등으로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때마다 일본 목수들은 ‘조선식 기와지붕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 목수들은 ‘일본식 건축은 구조가 튼튼하지 않아, 무거운 기와지붕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다.’ 라고 받아넘겼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부산부사원고’ 등 많은 고문헌을 통해 확보한 내용으로 씨줄을 삼고, 지난 10여 년간 저자가 옛 초량왜관 일대와 대마도 등을 직접 답사하며 확인한 내용으로 날줄을 삼아 구성됐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진 내용도 있겠지만, 저자는 새롭게 발굴한 내용과 독자적인 해석을 담아, 저자의 후속연구는 물론이고 왜관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도록 구성했다.

이 책이 세계도시 부산의 탄생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