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막바지에 현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따기 위해 심판들을 매수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은 프랑스 등 유럽 기자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번 올림픽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좋은 성적과 함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슈퍼스타의 탄생을 원했다. 슈퍼스타가 나올 수 있는 종목은 러시아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다. 러시아는 좁은 링크에서 몸싸움을 주로 하는 캐나다·미국 선수들이 불리하도록 링크를 크게 만드는 등 러시아 우승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또 다른 슈퍼스타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가능한 종목이 심판들의 재량이 큰 여자 피겨스케이팅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평가받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터라 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이 종목 첫 금메달리스트가 나온다면 러시아 국민이 열광할 건 분명했다.

이번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심판진은 대부분 유럽 인사들로 구성됐다. 그 중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테크니컬 패널’의 리더 격인 ‘컨트롤러’가 러시아인이다. 푸틴 대통령은 피겨 단체전을 직접 관전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국제빙상연맹(ISU)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은 소치가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한 푸틴의 측근이다.

지속적으로 제기된 러시아의 판정 개입설은 단순한 소문을 넘어서 실현 가능한 이야기로 떠돌았고 그게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고 말았다. 김연아와 미국·일본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반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는 후한 점수를 챙기며 러시아 최초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판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이 나왔다. 소트니코바는 “나는 열심히 준비했고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는 말만 반복했다. 인터뷰가 각국 취재진 사이에서는 “새로운 채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다.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성적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슈퍼스타도 나왔으며 서방국가가 지속적으로 문제 삼은 테러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가 러시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에는 많은 게 부족하고 엉뚱했다. 러시아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편파 판정 논란으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게 됐다.

소치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각국 선수간 경쟁이 아니라 러시아를 제외한 나라 선수들과 푸틴 대통령과의 싸움이었는지 모른다. 김연아가 실력으로 맞서기에는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