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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불과 2주일 만인 27일 성주로 진입한다. 성주는 경상도 거점 고을이었다. 성주 서쪽에는 가야산 해인사가 있다. 해인사는 행정구역상 합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성주에서 훨씬 가깝다. 해인사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인쇄사에 불멸의 업적'으로 불리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사찰이다. 일본은 조선 초부터 팔만대장경을 차지하려고 혈안이었던 터라 이를 약탈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절망적인 순간 곽재우(1552~1617)를 비롯한 거창의 김면(1541~1593), 합천의 정인홍(1535~1623) 등 경상우도 의병과 휴정(서산대사)의 제자 소암이 이끄는 승병이 일어났다. 의병·승병 5000명은 왜군 2만명을 공격해 성주성에 몰아넣은 다음 8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 대규모 공격을 퍼부었다. 적은 김천, 선산으로 퇴각하고 낙동강 서부가 수복되면서 팔만대장경도 지켜냈다.


https://news.v.daum.net/v/20191120060504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