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 사는 영지(가명, 19세)는 오랫동안 할아버지 심정한(가명, 83세) 씨와 단둘이 생활해 왔다. 어느 덧 심 씨는 여든을 넘겼고, 영지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

영지는 불경기에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은 현실을 감안해 가능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하고자 한다. 변변한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지만 뜻밖에도 영어공부와 영미문학에 재능을 보이는 영지. 영미소설은 되도록 원서로 읽으려 노력하고 번역 쪽에도 관심이 많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 온 터라 이번
수능성적도 기대 이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로 진학이 가능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요즘은 지방대 나오면 취업하기 힘들잖아요. 앞으로 할아버지랑 좀 더 잘 살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 하루 빨리 제 앞가림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혼자 남아 쓸쓸하게 집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다. 영지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보살펴준 부모 이상의 고마운 분이고, 혈육이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지의 아버지는 영지가 두 살 때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모두에게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 후 두 달 뒤, 엄마마저 집을 나갔다. 당시를 떠올리던 심 씨는 아직도 삭히지 못한 한이 가슴에 서려있는 듯하다.

“며느리는 숫자도 잘 못 세는 지적장애였고, 며느리의 친정 또한 영지를 양육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지가 두 살 때부터 영지 할미와 제가 맡아서 길렀습니다.”

영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영지와 심 씨는 단둘이 의지해 생활을 해야 했다. 심 씨는 67세까지 건축 현장에서 벌이를 했지만, 노환으로 벌써 오래전 그 일을 그만뒀다.

어렵게 구한 아파트 경비직을 3년 정도 한 것이 마지막 경제활동이다. 현재 두 식구는 영지 앞으로 나오는 33만원의 정부보조금과 영지를 아끼는 개인후원자가 있어 한 달에 10만원 씩 보내주는 돈으로 살고 있다.


 


손녀 대학 걱정에 무거운 마음

“저거(영지) 키우는데 눈물도 많이 났어요. 애미, 애비가 없으니 뭘 제대로 해 줄 수 있나요. 가슴 아픈 얘기를 어찌 다 해요. 다 못해요. 그래도 여태까지 잔병이라고는 없이 커줘서…. 그게 고맙지요.”

지금 심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영지의 대학 진학 문제다.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충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번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공부하러 올려 보낸 손녀가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다는 건지, 걱정부터 앞선다.

“쟤도 할아비 손에 크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마음이야 백 번도 더 보내고 싶은데….”

심 씨는 지난 11월 보일러 값을 아끼기 위해 안방에 연탄난로를 설치했다. 빚까지 얻어 영지 방과 난로에 넣을 연탄 3백 장을 샀다. 겨울을 나려면 하루에 4~6장씩 들어가는 연탄 값도 만만치 않다.

“사람 사는 게 뭔지…. 정말 힘들어요.”

손가락이 떨려 혼자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여든 할아버지와 이제 막 세상으로 나가려는 손녀가 마주 앉아 있다. 서로 의지하며 견뎌온 날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남은 희망을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