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 꿀벅지, 루저녀에 담긴 남성주의
- 고재열 -





KBS <미녀들의 수다> 루저녀 발언에 대해 많은 남성들이 소송을 냈다고 한다.
참 찌질한 짓이라고 본다.
찌질한 짓이기는 하지만 소송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렬한 각인 효과를 남긴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이로써 예능PD들에게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형성되었다.)

외국처럼 한국도 가이드라인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
일단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들 - 인종 성별 외모... - 에 대한 것은 공적 영역에서 희화하면 안 된다는 묵계가 필요하다.
그 당사자가 자신을 희화화 하는 것은 예외로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소송질은 웃긴 일이라고 본다.
'180cm 이하는 루저'라고 부른 것은 '개념없는 일'이고 이를 방송에 내보낸 것은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으로 단죄할 윤리의 영역이지 법으로 처벌할 범죄의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이걸 처벌하면 <개그콘서트> 왕비호는 아마 수백 수천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야 할 것이다.
여자들이 취향을 얘기하면 당연히 해당되지 않는 남자들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키 작은 남자, 전문직이 아닌 남자, 돈 없는 남자...

루저녀 논란으로 인해서 <미수다> 제작진이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해봤다.
조중동 방송이 등장하는 1년 뒤 쯤이면 제작진이 억울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오해없으시길,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루저녀보다 진짜 잘못한 사람은 이를 내보낸 제작진이다.)

지금 우리 방송은 '다공영 1민영' 체제다.
시청자들이 방송에 요구하는 수준은 '공영방송' 수준이다.
민영방송인 SBS라고 해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영성에 갇혀 있는 SBS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뀌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업논리가 주도하게 된다.
루저녀 발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방송처럼 노출 마저도 공공연히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선 예능PD들에게 이런 '공영성'은 짐이다.
표현수위와 표현수단 표현방식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지켜가며 시청률 대박을 얻어낸 PD들이 정말 대단한거다.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나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등등...

잠깐 <미수다>의 '대의'를 살펴보자.
<미수다>의 '대의'는 '다양함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주한 외국인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자,
외국에 대해서 편견을 버리자, 라는 것이었다.

초기에 <미수다>는 다양한 '미녀'가 등장했다.
따루(맞나?)처럼 얼굴은 못생겼지만 똘똘한 여성도 등장했고
후진국과 흑인 여성도 등장해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미수다>는 미녀선발대회를 변질되었다.  
주한 외국인 여성들의 연예인 등용문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에듀테인먼트' 혹은 '인포테인먼트'의 기능은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그 중간에 나타난 변화는 KBS 사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에서 이병순 사장으로.
그럼 이해가 가지 않나?

이제 남성성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미남들의 수다>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외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작업'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아직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그룹은 남성이다.
외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들을 '농락'한 것이 어떻게 방송 소재가 되느냐며 막을 것이다.  

루저녀 사건으로 확인된 것은 남성성의 지배력이다.
루저녀 파문을 보도한 언론의 주도층도 남성이고
루저녀 파문을 확산시킨 인터넷의 주도층도 남성이다.
남성에게 불편한 것은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루저녀 파문 한 달 전쯤 있었던 '꿀벅지 파문'을 보자.
'꿀벅지'라는 성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을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보도나 확산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나?

'꿀벅지'라는 용어를 유통시킨 것은 언론이었고
여성들의 반발은 찻잔속의 태풍으로 머물렀다.
'꿀벅지 파문'은 당사자가 그렇게 불리면 고맙다, 정도의 '투항'을 얻어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남성을 불편하게 하면 그대로 매장되지만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불편한가' 하는 수준의 담론으로 맴돌다가
'그게 뭐 어때'로 종결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된장녀' 논란을 들 수 있다.
이 논란 역시 남성중심주의 사고를 여실히 드러낸다.
남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된장녀 논란에 대해
'가질 수 없는 여성의 감당할 수 없는 소비수준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했다.
참 적확한 표현이다.

어떻게 취향이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취향이 벌이를 승한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을 추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그것을 '된장녀'라 희화화 시켰다.

'루저녀' '꿀벅지' '된장녀' 논란이 보여주는 것은
미디어와 인터넷의 강자는 여전히 남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고소는 하지 말자, 이 무슨 찌질한 짓인가?

180cm 이하라면 대한민국 남자의 80% 정도가 해당될 것이다(나를 포함해서).
손석희 이준기를 포함해서 많은 유명인들도 포함되고.
그들이 루저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환기했으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