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유난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성품이 단순명료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이름에 '3'자가 들어가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는 설도 있고, 3개 이상은 남의 머리를 빌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암튼 '신한국 창조'를 문민정부의 국정지표로 내세운 YS는 부정부패 척결, 경제 살리기, 국가기강 확립을 신한국 창조를 위한 3대 개혁과제로 정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국정은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경제 죽이기'로 끝났지만.



논리를 중시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후보 시절에 '3단계 통일론'으로 박정희를 혼쭐나게 하더니, 지난 1월 이명박 정부 1년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3대 위기'라는 프레임으로 가둔 바 있다.



DJ는 세상을 떠났지만 3대 위기 프레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걸핏하면 경찰차의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과, 300일째 장례도 못치르는 용산참사, 그리고 그런 게 있었는가 싶게 유명무실한 비핵․개방․3000은 이명박 정권의 3대 위기를 상징하는 '3대 현장'이다.



'대한민국 747'과 '비핵․개방․3000' 그리고 '인생 3모작 시대'



실용을 중시하는 이명박(MB) 대통령도, 간명하게 요약하기 쉽기 때문인지 '3'이라는 숫자를 즐겨 사용한다.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사용한 이른바 '대한민국 747' 공약과 '비핵․개방․3000' 공약 그리고 '인생 3모작 시대'가 다 세 가지를 담고 있다.



이 대통령은 16일 제28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벤처기업 창업과 중소기업 도전을 청년실업 극복방안으로 제시하면서 '평생 직장의 시대'가 갔다고 선언했다. '인생 3모작 시대'에 산다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구직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충고였다.



"청년 취업은 아무리 토론하고 고민해도 우리 청년들이 패기를 가지고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더 많이 도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실업자들은 늘어나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지금도 20만 명 넘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공무원시험은 수백 대 1의 경쟁율을 보이지만, 인재를 간절히 원하는 중소기업, 특히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청년들도 이제 평생 직장의 시대가 가고, 인생 3모작 시대에 산다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정된 직장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의 능력도 새롭게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전문성을 키우는 노력과 함께, 정부에서 제공하는 직업훈련도 받아보기를 권합니다."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과 '철밥통'(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지 말고 벤처기업을 창업하거나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의 의미를 나 자신 살아가면서 더 실감하고 있다"면서 "대기업에 가면 주어진 틀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매몰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자기가 가진 역량을 보다 넓게 발휘하면서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회사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도 얘기했다.



당장 1모작도 어려운 청년 실업자들에게 인생 3모작이라니



낙타가 통과해야 할 바늘구멍 같은 취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창업과 해외로 눈을 돌리라는 조언은 100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청년실업자들에게는 헛헛한 가슴에 불을 지르는 열불 나게 하는 말씀이다. 인생 2모작은커녕 당장 1모작도 어려운 청년 실업자들에게 인생 3모작에 대비해야 한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청년 실업자들에게 중소기업 취업을 권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월 29일 '청년 취업, 젊은이와의 대화'에서도 수도권에서만 찾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서 지방 중소기업을 찾으라고 훈수했다. MB는 자신이 젊었을 때 현대건설이라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최연소 CEO(최고경영자)가 되고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운 이명박 신화를 여러 번 얘기한 바 있다. 그는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반복해 청년들을 '세뇌'시키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러나 오늘의 시각으로 당시를 재단해선 안되듯이 당시의 시각으로 오늘을 재단해서도 안된다. MB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대기업집단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고 중소기업뿐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견기업에 속했다.



MB는 65년 자신이 입사했을 때 현대건설은 종업원 98명의 중소기업에 불과했으나 92년 퇴사했을 때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MB가 입사하기 3년 전인 62년에 이미 도급한도액 1위로 대통령산업포상을 수상한 중견기업이었다. 또 당시 한국 사회는 누구나 가난했으면서도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으로 충만했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차고 넘치지도 않았고, 정규직과의 격차가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다.



본인 스스로 "(현대건설에서) 원 없이 일했다"고 했을 만큼 일중독자였던 MB는 입사 3년차였던 중기사업소 과장 때도, 직원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출근시간을 아침 7시에서 6시로 앞당겨 맨손체조와 구보를 시켰다. 여직원들이 화장을 해야 하니 출근시간을 아침 6시30분으로 30분 늦춰달라고 하자, 그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일찍 퇴근하니 밤에 화장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꾸했다고 한다.



Boys be ambitious!, Boys be MBtious!



그러나 '평생 직장의 시대'만 지나간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사실상의 '강제노동이 통하는 시대'도 지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99%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MB는 라디오연설에서 일방통행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다.



"청년기에는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기회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청년실업 극복을 주제로 한 라디오연설의 핵심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Boys be ambitious!'이다. '청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Boys be MBtious!'이기도 하다. '청년들이여 MB처럼 되어라'는 것이다.



  
  





실제로 MB는 후보 시절인 지난 200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대전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가진 1일 명예교사 특강에서 칠판에 "Be a MBtious(ambitious)"라고 쓰고 학생들에게 꿈과 야망을 가지라고 하면서 "'MB'는 바로 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령별 고용률 추이를 보면 사정이 딴판이다. 장년층(30~54세)은 2000년 73.7%에서 2008년 75.3%까지 완만하게나마 개선되다가 2009년(1~8월)에는 74.2%로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0.9%p 하락했다. 이에 비해 청년층(15~29세)은 2004년 45.1%를 정점으로 2009년(1~8월)에는 40.7%로 5년 동안 4.4%p 하락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가장 낮은 수준인데, OECD 국가 중 한국보다 청년 고용률이 낮은 나라는 헝가리 한 나라뿐이다(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이명박 정부 2010년 일자리 예산안').



또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자(실업률)는 2009년(1~8월) 기준으로 92만명(3.8%)이지만,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생과 백수, 18시간 미만 취업자를 합친 실제 실업자(실업률)는 2005년 339만명(13.3%), 2009년 8월 현재 397만명(15.1%)으로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도 2010년 일자리 예산을 보면, 2009년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모든 항목에서 예산을 삭감했다. '4대강 죽이기'로 인한 혈세 탕진과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 탓이다.



'반(反)MB' 민심은 "이제 고만 해라"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물정 모르는 한가한 라디오연설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들리는 모양이다. 국정운영 지지도와 라디오연설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소수인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지금의 민심은 한 마디로 '반(反)MB'다. MB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이른바 '3대 현안' 혹은 '3재'(三災)에 대한 민심이 그렇다.



우선 세종시 문제의 경우, 국민들은 '원안+알파'에 대해 56.4%가 찬성한 반면에, 반대는 34.4%에 불과했다. 미디어법도 '헌법재판소가 입법과정의 위법성을 지적한 만큼 다시 개정해야 한다'(66.5%)가 '개정 불필요(25.1%)'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MBC-코리아리서치 15일 조사). 4대강 사업도, '사업효과가 의심되므로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56.1%)가 '이미 예산이 투입됐으므로 계속 추진해야 한다'(29.7%)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KSOI 9일 조사).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2주일에 한 번씩 라디오를 독점해도 여론이 이러니 딱하다. 이런 상황에서 라디오연설은 전파 낭비다. 알다시피 MB 라디오연설은 1930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루즈벨트가 경제대공황을 국민과 함께 극복한 것처럼 세계적 경제위기를 국민과의 훈훈한 소통을 통해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MB는 지난해 10월 13일 첫 라디오연설을 시작한 이래 2주일에 한 번씩 28차례 연설을 했다. 연설에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은 소소한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정치-경제와 북한핵 등 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3대 현안에 대한 민심은 MB더러 "이제 고만 해라"는 것이다. 더는 일 벌이지 말고, 임기나 잘 마치라는 조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MB가 지난 13개월 동안 28차례나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했지만 3대 현안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국민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세종시 문제의 경우, 정운찬 총리를 '총알받이'로 내세운 채 고상하게 백년대계론만 되뇌일 뿐, 세종의 '세'자도 꺼낸 적이 없다.



고작해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 이름만 바꿔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으신 분들도 있지만 국론 분열 위험이 있어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6월 29일)거나 "논란이 심했던 미디어법은 신기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입니다"(7월 27일, 국민과의 소통 위한 특집 대담)라고 마지못해 말한 것뿐이다.



민심 거역하면 '식물 대통령' 되어 '인생 4모작' 할 수도



  





국민과 소통하는 가운데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국정을 이끌고 갈 책임과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쟁점 이슈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연설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비교 자체가 진부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타운홀 미팅으로 반대하는 국민과 소통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원들을 설득해 마침내 공화당과 기득권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강보험 개혁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오바마 대통령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오바마는 무보험 상태인 국민의 15%(4600만명)에게 보험혜택을 주기 위한 의료개혁에 필요한 1조 달러 이상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 증세와 재정 지원을 선택했다.



미 국민의 70%가 의료보험 개혁 자체에는 찬성한다. 상원 통과라는 관문이 아직 남아 있지만, 오바마의 사례는, 정치지도자가 국민을 이끌고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은 인간적 신뢰와 정책의 진정성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법을 다수의 힘으로 날치기하고, 여야가 합의한 세종시 원안을 뒤집고, 온갖 위법탈법으로 4대강 사업을 착공한 MB의 사례와는 정반대다. 그러니 국민의 60~70%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MB는 지금 미디어법과 세종시 그리고 4대강 사업이라는 '3재'에 직면해 있다. MB 정부가 아무리 친서민과 중도실용을 외쳐도 국민이 믿지 않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증명하는 길은 국정을 구현하는 청사진인 내년 예산안에 숨은 4대강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부자 감세를 철회해 민생-복지예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같은 민심을 거역할 경우, MB는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되어 '인생 4모작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