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 홈플러스를 때리다


도청과 도의회 건물 사이에 임시 연단이 세워졌다. 국회의원, 정무부시장, 도의회 의장, 시의회 의장, 상인연합회장, 시민단체 대표, 5개 정당 대표가 그 위에 나란히 섰다. 6월18일 충북도의회 광장에서 열린 '홈플러스 불매운동 및 중소상인 살리기 서명운동 선포식' 풍경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은 '민·관·정이 한데 모인 뜻깊은 자리'라고 말했다.


↑ 일반 슈퍼 내부.


↑ 기업형 슈퍼내부.

시작은 지난 4월15일 충북 25개 시민사회 단체와 상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충북민생경제살리기운동'이었다. 점점 살 길이 막막해지고 있는 서민과 중소상인들을 위해 긴급하게 대책을 강구해야겠다 싶어 모이게 됐다는 이 단체 최윤정 사무국장은 "당시만 해도 우리가 대형마트 불매운동을 벌이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겨우 두 달여 사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덕분에 충북, 그중에서도 청주는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SSM) 규제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된 오늘날 전국이 주목하는 화약고가 되었다.


"여름이 더 걱정이다"

우선은 5월1일 홈플러스 청주점이 24시간 영업을 강행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업계 2위로 이마트를 바짝 뒤쫓고 있는 삼성테스코(주) 홈플러스는 충북 지역에서 이마트를 제친 지 오래다. 이 지역 대형마트 8개 중 4개가 홈플러스다.

홈플러스 청주점이 24시간 영업에 나서면서 인근 상가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현규씨(40)는 "편의점 매출은 밤 10시 이후가 중요하다. 그 전에는 컵라면이나 과자 사러 들락거리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10시 이후가 돼야 술이나 안주처럼 마진이 높은 상품들이 팔려나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홈플러스가 24시간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 시간대 매출이 20만원가량 급감했다는 것이다.

인근 아파트 상가에서 20평 규모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아내와 내가 일하는 양을 따지면 주당 200시간은 될 거다. 새벽 1시에 가게 문 닫고 집에 가 서너 시간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하며 근근이 버텨왔다. 그런데 대기업이 밤샘 영업까지 하겠다고 나오면 우리가 당할 재간이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들 상가 주인들은 "지금은 그나마 버티는데, 여름이 더 걱정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피서 겸 한밤중에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법원마저 대형마트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 6월11일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황석주 부장판사)는 지자체가 대형마트 입점을 불허한 것은 부당하다며, 리츠산업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사업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의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7월28일 청주 시내 13개 재래시장 2500여 점포가 일제히 문을 닫은 일이 있다. 청주시 화물터미널 인근 비하동에 또 다른 대형마트가 입점한다는 소식에 격분한 상인들이 실력 행사를 벌인 것이다. 당시 청주시는 대형마트 입점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시행사가 1년여 행정소송을 벌인 끝에 나온 것이 이번 1심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지자체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곧 지자체가 재래시장 활성화, 중소 유통·판매업자 보호와 같은 공익적 요소를 고려해 사업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나, 대형마트 입점으로 인해 지역 경제의 건전성이 악화됨을 구체적·합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만큼 지자체 결정이 위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기업형 슈퍼마켓이다. 기업형 슈퍼는 보통 대형마트를 운영 중인 대기업이 직영하는 슈퍼마켓을 일컫는다. 매장 면적 3000㎡ 이상인 대형마트와 달리 1000㎡ 안팎 작은 규모로 골목 상권에 침투하는 바람에 동네 상인들에게는 '유통업계의 저승사자' 같은 존재로 꼽힌다.

2009년 4월 말 현재 기업형 슈퍼는 500곳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충북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12월 말 현재 34개소가 입점해 있다. 그런데 내년까지 이들 기업형 슈퍼가 200여 곳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이 발표되면서 동네 상인들이 발칵 뒤집혔다.

이 중에서도 표적이 된 것이 또다시 삼성테스코다. 곧 삼성테스코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문제가 됐다. 1000㎡급이 대다수인 타사 기업형 슈퍼와 달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에는 330㎡(100평) 미만 소형 점포가 많다. 전국 152개 점포 중 132곳이 330㎡ 미만이다. 청주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1호점(금천점, 239㎡ 규모)을 시작으로 청주에 들어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3곳이 모두 330㎡ 미만이다.

홈플러스 24시간 영업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던 6월15일 새로 문을 연 4호점(개신점)이 330㎡ 규모여서, 그중 가장 큰 편이다. 충북청주슈퍼마켓협동조합 원종오 이사장은 "100평 이하 슈퍼까지 대기업이 먹겠다고 나오면 골목 상권은 말 그대로 끝장이 나는 셈이다. 1년 이내에 반경 300m 이내 상가는 초토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개장 사흘째인 6월17일 오후 5시께 찾아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4호점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매장 바깥에 임시 계산대 2곳을 새로 설치했는데도 물건 값을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입구까지 넘쳐흘렀다.

매장 안에서는 초코파이 한 상자를 사면 2개를 덤으로 주고, 고추장 2kg짜리 한 상자를 사면 쌈장·된장 500g을 끼워주는 따위 '오픈 축하-생필품 하나 더 초특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매장 바깥에는 유명 브랜드 남녀 정장을 80% 세일하는 임시 매대가 마련돼 있었다. 액세서리 판매대도 곁에 있었다. 규모만 작을 뿐이지 대형마트 뺨치는 구색이었다. 담당 직원은 "오픈 행사로 일주일만 의류 판매를 실시한다"라고 말했다.


"나라가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같은 시각 4호점에서 도보로 150m가량 떨어진 ㅋ슈퍼를 채우고 있는 것은 늘어진 발라드 가요뿐이었다. 240㎡(70여 평) 규모로 개인이 운영하는 것치고 규모가 큰 이 슈퍼마켓에는 주차장, 쇼핑 카트가 모두 구비돼 있었다. 그럼에도 기자가 이 가게 사장과 대화를 나눈 50여 분 동안 가게를 드나든 것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중학생 4명과 직원 친구 1명이 전부였다.

청주에서 20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왔다는 이성문 사장(50)은 "3~4년 전만 해도 옆에서 누군가 '장사 안 돼 죽겠다'고 하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2004년 인근 지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그 여파가 서서히 동네 상권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도 이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18명에 달하던 직원 수를 5명으로 줄였지만 서너 배 열심히 일하면 대형마트와도 경쟁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규모 점포끼리 공동 구매를 시도해 물건 값을 낮추고, 배달 서비스도 확대했다. 그런데 제살깎기였다. 영업 이익은 해마다 줄었다.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던 시절은 끝났다"라고 잘라 말하는 이씨는 "나라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형 슈퍼라는 '초대형 폭탄'이 바로 곁에서 터졌다. 이씨 부부는 더 이상 의욕이 없다고 했다. 이성문씨는 "솔직히 말해 나처럼 웬만한 자본력을 갖추고 빚도 없는 사람은 가게 팔고 이 바닥을 뜨면 된다. 그러나 우리처럼 중·대형 슈퍼를 운영하던 개인이 하나 둘 스러지면 도매상들이 견딜 수 없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동네 구멍가게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청주 1호점이 들어선 금천동 ㅎ슈퍼마켓 사장 김학철씨는 "익스프레스가 들어선 뒤 우리 상가에서만 정육점 등 3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형 슈퍼 입점이 예정된 지역 상인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청주 복대동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66㎡(20평) 규모 슈퍼를 운영하는 강 아무개씨(47)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해 1시간 자고 장사를 나오는 일도 잦다고 했다. 지난 3월 길 건너편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확정'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은 뒤부터다. "카운터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보면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쏴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달 기업형 슈퍼마켓이 입점한 인근 지역 점포 300곳을 상대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형 슈퍼가 입점한 뒤 가게 경기가 악화됐다는 점포는 10곳 중 8곳(79.0%)에 달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경영이 더 어려워질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60.7%)은 특별한 대응책이 없다고 답했다. 지방의 경우는 휴업 또는 폐업을 하겠다는 응답률(22.7%)이 수도권(4.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홈플러스 불매운동에 참여한 박영배 충북상인연합회장은 "가만히 있다가는 다 죽을 판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여도 좋다. 이대로 당하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재래시장 상가 철시 운동을 주도한 박 회장은, 최악의 경우 대규모 거리 집회는 물론 또다시 가게 문을 닫아거는 선택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집 앞 10분거리 안으로 대형마트가 2개입니다 -_ -

진짜 기업들만 어찌 더 잘살아볼까 고민하고 도와주는 정부..

이상한 나라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