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고용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조조차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에 해고 노동자, 촛불 시민, 지식인, 백수까지 들고 일어났다. 이름하여 '질주' 프로젝트. 비록 튼튼한 조직은 없지만 어려운 사람끼리 뭉쳐보자는 취지에서, 다시 말해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는 곳에 달려가 어깨 걸고 연대한다는 취지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월 21일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질주'와 관련 릴레이 기고를 받아 소개한다. <편집자말>

재벌들이 모여 예비 노동자들의 초임을 대폭 삭감한다고 발표해도,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 4년 기간연장'을 밀어붙이려 해도, 정규직 노조의 입에선 '말이라도 총파업' 선언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촛불시민, 지식인, 백수까지 나섰다(밝혀두건대 필자는 30대 초반의 백수다).

 

각자가 처한 상황의 작은 차이를 넘어 서로 어깨를 걸었다. 모르는 이가 보면 영락없는 오합지졸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인 '철의 노동자' '강철대오'와는 영 거리가 머니 말이다. 대신에 우리는 형형색색의 퀼트 천처럼 자신을 엮어 하나의 깃발이 됐다. 그것이 바로 모두의 삶을 처참하게 찢고 있는 불안정노동, 일하고 또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악순환에 맞서 싸우기 위한 질주,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질주' : 연대의 새로운 방식


지난 2월 14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9년 4월 21일, 프로젝트 '질주'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첫 번째 목적지인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대구-구미-서산-광주-평택-안산-인천-서울로 이어지는 9박 10일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주노동자와 장애노동자를 포함해 전국의 불안정·미조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투쟁사업장에서는 같이 집회도 하는 것이 일정의 주된 내용이다.

 

한마디로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는 곳에 달려간다는 게 기본취지다. 이 전국 순회라는 개념은 과거 전해투(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의 단골메뉴였다. 해고노동자들이 전국을 돌며 다른 사업장의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고 서로 연대하는 형태였다. '질주'도 형식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다.

 

동희오토, 기륭전자, 코오롱과 같은 2000년대 중후반 노동운동의 상징격인 해고노동자 뿐 아니라, 진보신당 등의 정당, 촛불시민연석회의 등의 자발적 참여시민, 르포작가, 블로거, 백수, 소설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에 속한 개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호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으며, 제조업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자영업자, 학술노동자, 예술노동자도 있다. 이념지향은 대체로 진보적이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사람도 있으니 역시 하나로 묶을 수 없다. 대체 이들 집단을 뭐라 불러야 할까.

 

스피노자가 '발견'했고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가 20세기 후반 새로이 조명한, '다중(多衆 multitude)'이 현재로선 가장 가까운 명칭이 아닐까 싶다. 수동적이고 획일화된 '대중(mass)'과 달리 자신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공통의 가치를 위해 능동적으로 네트워킹하고 연대하는 집단, 그것이 바로 다중이다. 과거에 노학연대 혹은 지식인-노동자의 연대사업은 각 소속집단의 의결에 의해 참여가 결정되었고, 연대의 방식이나 기간, 참여주체의 선별까지도 '조직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주'의 참여형태는 조직적 결의와 개인적 결단이 혼재된 형태다. 물론 네트워크의 노드(node 결절점), 다시 말해 제각각인 사람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모이게 하는 역할은 존재한다. '질주'의 상황실장이자 진보신당의 비정규담당인 이상욱씨다. 하지만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그가 단순참여자가 되고 이번에 참여한 사람 중 하나가 자발적으로 이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모든 과정에서 온라인 활동은 필수요소다. 어쨌든 기존 대형노조의, 조직노동자 중심의 연대활동과는 사뭇 다른 방식임은 분명하다.

 

단장님 실종사건

 

첫날인 21일 오후 대구에 도착했을 때 일행이 버스에서 처음 내린 곳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정문. 이주노동자 폭력단속을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근 동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낳았던 중국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무참한 폭력이 새삼 떠오른다. 어디 대전뿐이랴. 전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 직원들의 '법보다 주먹' 앞에 속수무책이다.

 

등록된 이주노동자이건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건, 그들의 처지를 개선시키지 않고선 비정규노동자의 처지도 개선될 수 없다. 그들이 사실상 한국의 최저임금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자신들의 안전판으로 여기고 방관한다면, 지금 한국의 정규직 노조들처럼 정당성을 잃고 고립되는 건 시간문제다. 누구보다 기업이 이 사실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회를 마치고 숙소인 건설노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질주실천단' 단장이 보이지 않는다. 기아자동차 모닝의 생산공장이자 100% 비정규직 사업장으로 '악명'이 자자한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한국 비정규노동문제의 핵으로 떠오른 그곳 사내하청 지회장인 이백윤씨가 '질주'의 단장이다.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바로 그였다.

 

얼마 전 서울모터쇼에서 모닝 자동차에 돼지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멋지게 성사시킨 서른둘의 '훈남'이다. 자연스럽게 단장으로 추대돼 9박 10일을 끌어가게 됐다고 한다. 저녁식사 자리에서야 그의 근황을 들었다.

 

"이백윤 단장은 지금 서산경찰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구속적부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해요."

 

이상욱 상황실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전해준 소식.

 

"모터쇼에서 선지피 좀 뿌렸다고 잡아간 건가요?"

"아뇨. 그 건은 아니고 작년 12월에 미신고로 집회한 걸 가지고 검찰이 구속기소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아무런 저항도 안 했는데 경찰한테 집단폭행을 당했답니다. 꽤 다친 것 같은데요, 부상치료 요구는 묵살됐습니다."

 

4개월 전의 미신고 집회 건으로 지금에서야 구속적부심이라니, 서산경찰 전원이 넉 달 동안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왔단 말인가. 하여간 서울경찰이나 서산경찰이나 사람 두들겨 패는 건 일등이다. 참가자들끼리 자기소개를 하고 회의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이백윤의 선한 얼굴이 아른거린다. 밤 11시 쯤 그가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젝트 첫날부터 단장 구속이라니, 이놈의 나라가 제대로 '환영인사'를 해주는구나 싶어 오기가 생긴다.

 

뜻밖의 사태로 첫발부터 단장이 공석이 되는 바람에 새로 뽑아야 했다. 같은 동희오토의 조합원인 이청우씨가 단장을, 기륭전자의 윤종희씨가 부단장이 됐다. 둘 다 군기 팍팍 잡는 스타일이라 좀 무섭다. 다음날 오전 6시부터 분단위로 일정이 이어진다. 일정표를 모니터 너머로 보던 내가 투정 한마디 한다.

 

"이건 뭐 A급 연예인 스케줄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낄낄대며 한마디씩 거든다. 예상치 못한 비보가 있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밝다. 수년간 거리에서 싸워온 사람들 특유의 낙천성, 그들을 보며 자신의 삶도 함께 변하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함이 기분 좋게 섞여든다. '질주'의 첫날은 그렇게 깊어갔다.

 

'포맷'되는 노동자, 반복되는 비극

 

대구엔 성서공단이라는 큰 공단이 있다. 1980년대 1차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에 4차 단지까지 생겼다. 울산처럼 고부가가치 금속산업에 특화된 지역이 아니라 영세사업장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곳이다. 2500여개 업체의 80% 정도가 50인 이하 기업이고, 6만 여 노동자 중 불과 130여명만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대구 특유의 보수주의까지 작용해서 노조설립은 물론 가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세사업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극한의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질주'와 조우한 성서공단 노동조합의 박찬희 위원장은 성서공단의 불안정노동자를 "경제위기에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라고 정의한다.

 

"전자부품, 섬유, 기계, 생활용품에서 어묵에 이르기까지 업종도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1%가 채 되지 않는 노조조직률에서 무법적 해고는 일상다반사예요. 성서공단에서 한국의 노동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에서 쉬세요. 일거리 생기면 다시 부르겠습니다'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노동조합에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으러 옵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전태일이 일하던 1970년대 평화시장, 1980년대 구로공단, 2000년대 성서공단…. 아침에 주인공이 일어날 때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이 무한히 반복되는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친재벌·반노동이라는 '국가종교 제1교리'와 결합해서 10년에 한번 꼴로 노동환경을 글자그대로 '포맷'해 왔다. 10년간 조금씩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가 싶으면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국가와 기업집단은 그 위기를 핑계로 10년의 진보를 단번에 '무(無)'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려 버린다.

 

1970년대 '공순이'란 사회적 경멸과 성차별, 인권유린에 시달리면서도 동일방직 사태의 주역으로 우뚝 섰던 여성노동운동의 기념비적 세대는 2009년 현재, 최저임금을 받으며 빌딩과 대학교의 청소용역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야만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게 바로 야만이다. 그 야만은 또한 지방도시의 외딴 공장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비정규 노동자가 넘쳐난다.

 

이민을 떠나지 않는 한, 정규직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온전히 그 불안과 공포에서 도망칠 수 없다. 이미 대한민국 자체가 거대한 비정규노동의 현장이며 참혹한 삶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질주' 프로젝트가 마지막 이틀을 보낼 장소가 서울인 건, 단순히 서울에서 일정을 시작해서가 아니다. 서울이 곧 현장이어서다.

 

가장 돈 많은 지역에 저가 음식 가게가 많은 까닭은?


김밥 집의 다양한 차림표. 1000원에서 2000원으로 한끼를 떼울 수 있는 이와 같은
저가 김밥전문점들이 강남에 무수히 많이 생겼다.

제조업의 산업주도성이 점차 쇠퇴하고 소위 지식기반경제가 심화될수록, 노동문제의 '현장'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과 포스트 포디즘의 특징인데,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고 서구 도시사회학에서는 핵심테마가 된 지 오래다. 이제 일터는 극소수의 '핵심 노동'과 절대다수의 '주변부 노동'으로 극단화한다.

 

중간층 노동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며 이는 중간계급의 붕괴 혹은 분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쨌든 1명의 엘리트가 먹고 입고 놀고 소비하는 것을 보조하는 '밑바닥 노동'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그런 노동은 대체로 단기 아르바이트와 같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된다.

 

그런 노동자들은 과거 중간계급처럼 대도시 주변의 위성도시에 거대한 베드타운을 형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안되기 때문에 대도시의 열악한 주거지역에 거주하게 되며 그런 지역은 점점 슬럼화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는 신흥엘리트들은 중간계급의 주거지역보다 도심에 급격히 늘어나는 펜트하우스를 자신의 여러 거처 중 하나로 삼는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노동자 집단이 같이 일하고 또 생활하는 셈이다.

 

서울이 이런 형태의 도시가 되어간다는 단적인 예가 있다. 강남 핵심지역에 있는 엄청난 숫자의 '김밥천국'이다. 김밥천국이라는 특정상호가 아니더라도 1000원에서 2000원으로 한끼를 떼울 수 있는 저가 김밥전문점들이 강남에 무수히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지역에 이런 점포가 많은 건 무엇을 시사하는가.

 

한끼 식사에 평균 이하의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비강남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강남은 훨씬 이질적인 계급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시텔과 같은 열악한 주거형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근거 중 하나다.

 

즉, 서울 강남은 드러나지 않을 뿐 울산이나 서산 못지않은 각종 노동문제의 화약고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문제는 결국 불안정노동의 문제이며, 불안정노동은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 뿐만 아니라 전문직군이라 불리는 금융서비스업, IT산업, 사교육산업 등의 공식경제 부문은 물론 비공식경제에 발을 걸친 각종 오락·향락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된다. 따라서 이 모든 곳은 불안정노동의 '현장'이고 '공장'이다.

 

'질주' 프로젝트는 '현장에 내려가서'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손 내밀어주는 온정사업이 아니다. 이 문제를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알리는 데 그쳐서도 안된다. 이건 우리 모두가 처한 어떤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체감하는 여정이다. 노동의 비정규화는 단지 일부 지역에서 고통받는 몇몇 노동자의 현안이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규정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고통분담 운운하며 비정규직을 늘리고 대졸초임을 깎아내는 저들은, 설령 우리가 불안과 공포에 굴복해 안구와 신장을 팔고 영혼까지 내어주어도 결코, 결단코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