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커서 무슨 사고칠지 몰라요! 무섭죠?"
[촛불 1년 릴레이 인터뷰] 촛불소녀

기사입력 2009-05-02 오전 10:12:15 

 
▲ 지난해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은 '미친 소 반대'를 외치는 수천 명 중·고등학생의 외침으로 가득 찼다. ⓒ프레시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헌법 제1조를 쓰라는 문제를 냈다. 다른 애들은 다 헤매고 있는데, 나는 눈이 번쩍 뜨여 신나게 썼다. 친구들이 '벌써 다 썼냐?'며 놀라더라."

나은지(가명·19) 학생의 웃음이 터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소개와 달리 말과 행동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촛불' 덕이라고 했다.

꼬박 1년 전인 지난해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은 '미친 소 반대'를 외치는 수천 명 중·고등학생의 외침으로 가득 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광장은 그들의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이 나라 정부와 어른에 대한 저항의 공간이자 억눌렸던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는 해방구가 됐다.

놀란 어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쪽에서는 "선동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비난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반성하며 뒤따라 촛불을 들었다. 유난히 많은 여학생들을 두고 '촛불소녀'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굳게 입을 다물고 초를 높이 든 촛불소녀 캐릭터는 촛불집회 내내 상징적인 아이콘이 됐다.

나은지 학생도 지난해 촛불은 들었던 소녀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그는 "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섰나"라는 질문에 "물론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 학생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촛불을 들었던 애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터넷과 뉴스를 보면서 민주주의 등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는 사건이라는 걸 알았다"며 "더구나 군홧발 사건, 전경 물대포 등으로 사건이 커지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공포심을 조장해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는 주장에 대해 "정말 트집 잡을 게 없어서 이상한 것으로 딴죽 부린다"며 코웃음을 쳤다.

"비유를 하자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나 은 바다 위에 떠있는 하나의 배였다고 본다. 배가 가라앉는다고 바다가 꺼지는 건 아니다. 배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였지만 그 밑에 '상식'과 '민주주의'라는 바다가 있었다."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정작 앞이 없더라"


나 학생은 촛불 집회에서 만난 청소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어른들은 우리가 하나의 불장난처럼 집회에 나온 것으로 아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다르다"고 지적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도 많았는데, 힘들어하는 애들이 많았다. 자기는 정말 엄마 아빠 말만 잘 들으면 세상을 편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촛불 집회에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제 나 어떻게 해야 되냐는 고민이었다.

대부분 청소년이 지금 하고 싶은 일도 미루고, 미래에 자기를 가둬놓고 산다.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있는 걸 모르고. 많은 애들이 '난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지금 이런 사회를 보니까 앞이 없는 것 같다'고 고민스러워했다."


어쩌면 청소년들에게는 광우병 자체의 공포보다는 학교 담장 바깥에서 내 뜻과 달리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르는 일들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와 대학만 강조하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도, 가르쳐주려고도 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나 학생은 "학교에 계속 갇혀 야자까지 하다보면 정말 내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진다"며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학교는 사회와 동떨어진 안드로메다 같은 우주"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에 갇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도 없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가혹한 경험을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며 떨쳐냈다는 것에는 '놀았다'고 규정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나은지 학생은 사회단체인 나눔문화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청소년들과 만난다. 지난해 촛불 집회 이후 생각을 나누고 고민을 확장해보려는 친구들이 모인 것이다. 학교에서 하지 못한 토론과 활동을 벌인다. 그는 "애들 얘기를 듣다보면 왠만한 책 하나 써도 될 정도"라며 웃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임에는 거의 여학생만 나온다고 했다. '촛불 소녀'라는 말에 주문이 걸리기라고 한 걸까. 나은지 학생은 "작년에 한창 할 때는 그래도 비율이 7:3 정도 됐는데, 갈수록 줄어들었다"며 "'나 어떡해' 하다가도 게임에 정신 못 차리고…"하며 다시 한 번 웃었다.


▲ 나은지 학생은 "학교에 갇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도 없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가혹한 경험을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며 떨쳐냈다는 것에는 '놀았다'고 규정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정책이 안 바꼈다고? 의식이 바뀌었단 걸 모르나"

나은지 학생은 그래서 지난해 촛불 집회 이후 바뀐 게 없다는 주장을 두고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정책이 바뀌는 것은 일시적이다. 중요한 것은 촛불 집회에 나갔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게 참 무서운 것이다. 역사책을 봐도 한 시대 위정자들이 자기가 다스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그렇다면 생각이 바뀐 학생과 시민들은 또 다시 촛불을 들까? 나 학생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창 자기 의식이 형성되던 청소년기에 촛불 집회를 경험한 애들의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행동도 달라질 것"이라며 "그래서 촛불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촛불 집회 이후에도 한국 사회에는 큰일들이 뻥뻥 터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난해 5월처럼 청소년들이 들고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나 학생은 "쇠고기 문제는 정말 없으면 못 사는 먹을거리 문제였다"며 "그러나 용산 참사 같은 경우는 시기도 시기였고, 애들의 한계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친소' 문제는 청소년들이 가볍지만 촌철살인을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용산 참사는 사람이 죽은 사건이었다. 저도 조금 많이 바뀌어가는 편이지만, 어릴 때부터 철거민 하면 어른들이 자꾸 선입관을 주입한다. 드라마에서도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애들이 바뀌었다. 확실히"

촛불 이후 나은지 학생의 일상은 바뀌었다. 이전까지 '공부'밖에 몰랐었다는 그는 "십대라는 소중한 시기를 공부만 하고 지내는 건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며 "후회하지 않게 다양하게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촛불 집회 이후 부모님과의 갈등이 이어졌다. 그는 "보수적인 집안이어서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며 "그런데 촛불 집회 이후 집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걸 종종 이야기하다 보니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학보사 활동을 하는 그는 지난해 특집 기사로 촛불 소녀 인터뷰를 썼다. 담당하는 교사는 싣자고 했지만 결국 교장, 이사회 등에 부딪혀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나은지 학생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썼는데도, 이사회와 교장 쪽에서 편파적이라며 내 기사를 조중동에 비교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기분이 나빴다"며 "선생님들은 저에게 '학교 신문이 별거 있냐', '어쩔 수 없이 사회 생활 겪다보면 다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추스리려 했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를 통해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뒤, 나은지 학생은 교육감 선거에서 정작 교육의 주체라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현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반장, 학생회장 선거부터도 장난으로 치르면 안되겠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애들이 바뀌었다. 확실히. 그래서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조심해야 한다고. 이 애들, 크면 무슨 짓을 할 줄 모른다."

 
▲ "애들이 바뀌었다. 확실히. 그래서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조심해야 한다고. 이 애들, 크면 무슨 짓을 할 줄 모른다."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이 학생들이 우리의 미래죠. 부디 이대로만 자라주길.

더러운 세상에 때 묻고,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에 무릎 꿇지 않길.

10대들이 이렇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으니 앞으로 4년뒤 10년뒤

조금은 나아질 우리나라라 위안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