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해외여행 즐기는 학생에서부터 등록금 마련 위해 막노동하는 학생까지

대학생마다 방학 생활은 달랐다. 빈부 양극화는 대학생들의 방학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두 달 남짓한 보너스 같은 시간. 대학생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각자의 방학 생활은 공평하지 않았다. 부모 돈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취업을 위해 성형 수술을 하는 대학생이 있는가 하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막노동으로 땀을 흘리고 발이 퉁퉁 붓도록 서빙해야 하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누구에게는 즐거운 방학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고통뿐인 방학이었다. 공평하지 않은 대학생 방학의 천태만상을 따라가 봤다.

등록금은 대출받아도 성형수술은 한다

유모씨(24·여·서울 ㅅ대 4년)는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6월 말에 받은 성형수술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유씨가 받은 시술은 '쌍꺼풀'과 '앞트임'. 유씨는 "성형수술 전의 '쌩얼'은 쌍꺼풀이 없고 크기도 짝짝이어서 맹한 인상이었다"며 "수술하고 나니 훨씬 또렷해 보이고 좋다"고 웃어 보였다. 유씨는 이번 방학 기간에 성형수술 받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2004년 1월에 코 성형 수술 경험이 있었다. "사실 이번에 코도 다시 하고 싶었다. 한 번에 하기엔 조금 부담됐다. 나이 들어서 여유가 있다면 귀족수술(팔자주름 제거)도 하고 싶다."

두 번의 성형수술 배경에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권유가 있었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던 유씨에게 아버지는 수술을 적극 권장했다. 자신감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였다. 수술비도 선뜻 내줬다. 두 번의 수술비를 합치면 약 300만원.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이다. "돈이 없어서 쌍꺼풀(수술) 못했다는 사람은 못 봤다.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한다. 등록금은 대출 받아서 천천히 갚으면 된다. 나도 이번에 대출을 받기로 하고 쌍꺼풀(수술)을 했다. 나뿐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방학은 자기계발의 시간이라는 유씨. 성형수술도 자기계발의 한 부분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방학을 이용해 미리미리 (성형수술을)해 두지 않으면 취업에서도 밀린다. 그게 우리 대학생과 사회의 현실이다."

낭만을 즐기다

정모씨(23·서울 ㅎ대 2년)는 8월5일 핀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체코, 폴란드, 헝가리, 네덜란드, 싱가포르…. 열 손가락에 열 발가락을 꼽아도 넘칠 정도다. 정씨에게 핀란드는 29번째 여행지다. 이번에는 핀란드뿐 아니라 주변의 스웨덴과 노르웨이에도 다녀올 계획이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자연을 상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는 정씨. 그동안 다녀왔던 수많은 나라 중에 그리스를 최고의 명소로 꼽았다. 하얀 벽돌집과 경계를 알 수 없는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산토리니 섬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의 외국생활과 부모의 뒷받침이다. 외국계 회사를 다닌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부터 5년동안 싱가포르에서 살았다. 덕분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부모도 적극 지원했다. 방학마다 해외여행길에 데려갔다. 친구들과 여행할 땐 비용을 대줬다. 2008년 6월 서유럽 여행 때는 부모께서 500만원을 지원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정씨를 보며 "나도 좀 데려가라"고 부러워한다. 정씨는 "다들 해외여행 하면 돈부터 걱정하는데 돈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가고 싶으면 장학금 타서 그 돈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씨는 앞으로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할 예정이다. "대학생활 하면서 여행은 꼭 즐겨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은 학교 안에서는 결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정씨에게 해외여행은 '대학생활의 낭만'이고 방학은 '낭만을 즐기는 기간'이다.

커피와 담배까지 끊고 '올인'

요즘 김모씨(26·서울 ㄱ대 4년)에겐 하루가 짧다. 올 11월로 예정한 영어공부를 위한 캐나다행 준비 때문이다. 오전 8시.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 김씨는 한 마디라도 더 듣고 말하기 위해 남들보다 20분 일찍 나와 앞자리에 앉는다. 수업에 누구보다 열심히 출석하지만 강사로부터 발음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이다. 김씨는 "어릴 적에 외국생활을 했다는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이어간다. 이날 김씨의 점심식사 메뉴는 볶음밥. 어제 점심도 볶음밥이었고 내일 점심도 볶음밥이 될 것이다. 밥값을 아끼기 위해 남은 반찬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스무살 때 시작한 담배는 최근 끊었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도 끊었다. 모두 '한 푼이라도 아껴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부산 장림동에 위치한 과외방. 그곳에서 김씨는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한다. 강사들의 수업준비를 도와주고 학생들이 묻는 문제를 풀어준다. 일이 끝나면 밤 12시. 7개월째 김씨의 하루는 똑같다.

김씨 아버지의 직업은 경찰. 대학 운동선수인 동생 뒷바라지만으로도 빠듯하다. 그래서 김씨가 선택한 것이 휴학과 워킹홀리데이다. 휴학기간에 아르바이트를 통해 초기자금을 벌고 현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한 달 수입은 80만원. 학원비 15만원과 용돈 5만원을 제하고 모두 저축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400만원. 목표인 1500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섣불리 뛰어든 주식시장에서 순식간에 한 달 수입에 맞먹는 70만원을 잃었다. 김씨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워킹홀리데이는커녕 벌어둔 돈마저 다 까먹을까 걱정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3개월이 지난 현재 원금을 회복하고 50만원의 수익을 얻었다. 김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말 그대로 '올인'하는 심정이다"고 말했다.

김씨가 위험을 감수하고 캐나다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정된 회사에 입사해 일하는 게 꿈이다. 그런 회사는 모두 영어면접을 본다. 나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대학생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

무급도 좋다 꿈만 꿀 수 있다면

이모씨(27·서울 ㅇ대 4년)는 '광고쟁이'가 꿈이다.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이제 졸업을 앞뒀다. 남들처럼 어학연수도 다녀왔으며, 광고 공모전에서 상도 탔다. 그러나 취업은 쉽지 않다. 학교 선배들은 남들보다 더 갖추지 않으면 광고인이 될 수 없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이씨는 지인을 통해 광고회사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이씨에게 이번 방학은 '부족한 경험을 채우는 기간'이다.

오전 8시 출근.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시계바늘이 한 바퀴가 넘게 돌아가 있고, 날은 어느새 어두컴컴하다. 이씨는 "늦게 끝나는 것은 상관없는데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고 말했다. 이씨는 '무급'인턴이다.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일하고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도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고, 그게 경력이 된다면 돈을 주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상상하던 실무와 현실은 달랐다. "정식 과정을 통해 입사한 인턴은 체계적으로 광고 '업무'를 배운다. 그러나 나처럼 경력 쌓기로 들어온 인턴은 그저 '잡무'를 한다.

똑같은 대학생인데도 차별을 받는다." 경험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지만 경제적 어려움도 무시하지 못한다. 무급으로 일하다 보니 용돈이 바닥을 드러낸 것. 이씨는 "나는 88만원세대보다도 못하다"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다들 방학에 이 정도는 한다. 이게 다 꿈을 위한 투자다."

꿈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의대생이 지니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들의 보장된 미래는 선망의 대상이다. 최고 명문대 의대 본과 4학년인 최모씨(26)의 삶의 색깔은 회색이다. 지난해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최씨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실직했고, 빚이 늘면서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졸업 1년을 앞둔 최씨는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장 등록금이 문제였다. 정부가 보증하는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기한이 지났다. 그래서 제2금융권을 찾았다. 최씨는 "그게 실수였다"고 후회했다. 원금 400만원에 한 달 이자만 9만원. 연 20%가 넘는 고리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대출을 받았다. 최씨는 "등록금도 많이 올랐고 한 달에 책값만 20만원이 든다. 실습비에 밥값까지 더하면 한 학기에 1000만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외를 시작했다. 불황임에도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이름이 주효했는지 2건이나 구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10시간. 6월 말부터는 막노동판에도 나갔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철근을 나르고 먼지투성이 공간에서 청소하니깐 딱 죽을 것 같더라.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다가 죽는 건 참 쉽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은 한 학기. 최씨는 걱정이 앞선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가세는 기울고 집 나간 아버지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지방에 내려가 식당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나 같은 애들과 잘 사는 애들은 성적, 전공 선택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면서 "의사로서의 출발선이 다르다"며 한숨지었다. 치솟은 등록금과 홀로 해결해야 할 생활비. 최씨에게 방학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기간"이다.

방학은 돈 버는 기간

대학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김모씨(22·여·서울 ㄱ대 3년). 지난 학기 등록금은 505만원이었다. 1년 등록금은 1000만원이 넘는다. 김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현재 자취를 하고 있다.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합하면 연 15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네 차례의 학자금 대출과 휴학 후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근근이 해결했다. 김씨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로 5남매를 키웠다. 현재 고등학생인 막내를 빼면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2, 3살 터울인 김씨 남매 등록금과 생활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설상가상으로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감귤은 더 이상 '대학나무'가 아니었다.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등록금은 물론 서울에서의 자취생활 비용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서울의 자취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올라온 서울생활은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4개월에 100만원. 아침저녁 식사 문제가 해결됨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그러나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일시불로 내야 한다. 매달 벌어서 생활비로 쓰는 김씨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결국 한 학기만에 월세방으로, 한 학기만에 고시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서울에 와서 '이곳이 내 집이구나'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옮겨 다녔다. 그게 참 힘들었다."

지난 학기부터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한 동생과 함께 산다. 덕분에 외로움은 줄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집세와 공과금만 해도 20만원, 학자금 대출이자에 생활비까지 하면 한 달에 40만원이 넘게 든다. 김씨는 학기 중에 과외와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로 모든 생활비를 마련했다. 남은 돈은 저축을 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300만원. 다음 학기 등록금이다. 부족한 등록금을 위해 이번 방학에 제천으로 내려갔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기술팀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받았다. 굳이 제천에까지 내려가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씨는 "우선은 돈을 벌고 숙식도 해결된다.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들을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등록금에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과 라디오 PD라는 꿈을 위해 김씨 스스로 내놓은 절충안이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악착같이 모아봤자 100만원 남짓. 아직 등록금으로는 100만원이 부족하다. "남은 기간에 어떻게든 마련할 것이다. 더 이상 대출은 받기 싫다.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출금이 지금은 2000만원을 넘어섰다. 갚을 생각을 하면 암담하다. 정말 방학은 돈을 벌라고 주는 시간 같다."






이런 판국인데 대출기간 연장해줬으니

등록금 걱정 끝이라는 헛소리만 해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