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성여고 3학년 9반 학생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선생님, 나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저 책상에 앉아 있기가 불편해요. 평소 선생님께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살라고 하셨죠. 오늘 저희들, 봉하마을에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규칙을 어겼지만, 저희는 당당합니다. 선생님, 내일 마땅한 처벌을 받겠습니다. - 배재현 외 8명 올림"

부엉이 바위 아래로 '별'이 떨어진지 나흘째 되는 26일 밤 9시, 아직 수학책을 펴고 있어야 할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봉하마을을 살핀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 곁에 선 그들의 교복은 조금 낯설다.


"야자(야간자율학습) 시작 10분 전에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나왔어요. 도저히 책상 앞에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진해시 분성여고에 다니는 3학년 배재현(18)양이 꾸중들을 것을 감수하고 봉하마을에 나온 이유다.


"지난해엔 미국산 쇠고기 문제, 대운하, 민영화 등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 때문에 촛불 시위에 갔었어요. 저희들, 수업하기 싫다고 땡땡이 친 학생들 아니에요."


배양은 "어제 < 조선일보 > 1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뉴스가 없어 화가 많이 났다"며 "멋모르는 학생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부엉이 바위가 어디고?"
여고생들은 부엉이 바위가 어딘지 한참을 헤매다, 달빛에 어슴푸레 비친 암벽을 바라본다.
"저기가 부엉이 바윈가 봐. 어떡해…."
한참 재잘거리던 목소리들이 일시에 잠잠해진다. 같은 반 이분영(18)양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고 내렸지만, 남을 위해 살았던 대통령"이라며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니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친구 황금선(18)양이 친구들에게 제안한다.


"우리 혼날 것 알고 왔지만, 또 이렇게 구경만 하고 가면 되나. 봉사활동이라도 하자, 그래야 좀 맘이 놓일 것 같지 않나?"




소녀들이 자원봉사자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중인 이분영(18) 양


"자원봉사하러 왔는데요. 도와드릴 것 없어요?"
"아이고! 이쁜이들, 교복 배린다(더러워진다). 내일 학교도 가야지."
"괜찮아요. 조금이라도 힘 보탤게요."
먼저 시작한 일은 쓰레기 분리수거. 쓰레기 종류 별로 분배된 봉투를 들고 한 명씩 자리를 잡는다. 코끝을 자극하는, 살짝 썩은 초코우유 냄새가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분영이는 옷소매를 끌어올린다. "쓰레기는 저한테 주세요!"라고 외치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맙다는 시민들 칭찬에 분영이의 눈동자엔 뿌듯한 기색이 감돈다.


"여긴 인제 괜찮다. 니들은 저기 가서 설거지하는 아지매들 어깨 좀 주물러 드려라."
행동 대장 재현이가 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9명의 작은 봉사단원이지만 어느 단체 못지않게 '조직적'으로 행동한다.


"엄니들 힘드시죠? 제가 꽉꽉 주물러 드릴게요!"
"아이고 시원해라! 아주 이뻐 죽겠네!"
여린 손들이지만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며 힘껏 주무른다. 덕분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자원봉사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설거지 봉사를 하고 있던 이한희(47, 김해 동상동)씨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인다. "고맙고 참 기특하네요. 한편으론 고3인데 안쓰럽기도 하구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아이들 표정에 걱정하는 낌새가 보인다. 학교를 나서기 전 썼던 편지가 걱정이 됐는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건다. 모두들 토끼눈으로 귀를 쫑긋한다.


"어떻게 됐어? 쌤(선생님) 화 안 났나?"
"선생님 야자 끝나고 오실 지도 모른다는데, 화는 안 난 것 같던데?"
다들 환호성을 지른다. 전화기 너머에서 이효실 담임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하니까 벌을 줘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장을 지켰던 촛불 소녀들이, 봉화마을에서 다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