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나는 1978년 KOTRA에 입사하여 32년간을 우리나라 무역진흥 업무를 해오면서 일본 수출기업과의 경쟁 속에 속앓이를 많이 했던 사람이다. 특히 80년대 초 해외근무 때는 우리나라 수출 상품이 많지 않아 무역관에 찾아오는 바이어들 중에서 우리가 수출할 수 없는 품목을 찾는 바이어들에게는 부득이 일본무역관(JETRO)을 접촉하라고 말해야 할 때가 가장 속상한 순간이었다. 7개국에서 도합 18년간 해외근무를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나 일본과의 수출경쟁은 숙명처럼 부딪치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은 그야말로 불철주야의 노력으로 경쟁국인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 해외에서 그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들이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들 덕분에 섬유산업부터 시작해 조선산업, 전자산업, 반도체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수출 강국 일본을 추월했다.

중계무역국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세계 수출 5강이다.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다음에 우리나라이다. 일본과의 격차도 그리 크지 않아 머지않아 추월할 가능성마저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제 우리가 일본을 극복해야 할 남은 산업분야는 크게 보아 정밀부품소재산업과 자동차산업 뿐이다.

그러한 수출경쟁국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2019년 7월 1일 한국에 대해 첨단소재 3 품목 수출규제와 우방국 백색국가 대우 폐지 등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수출규제 세 품목은 OLED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초정밀 기판 제작에 쓰이는 감광제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식각(Etching)에 사용하는 불화수소(에칭가스)다.

이를 보면서 필자는 오랜 무역진흥업무의 촉으로 직감적으로 50년 고질병을 고칠 하늘이 주신 전회위복의 호기라 여겼다. 이를 3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아야/ 대일무역적자에서 헤어나야 진정한 극일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우리의 수출 역사를 알아야 한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맨손으로 출발한 우리나라는 정말 이렇다 할 수출거리가 없었다. 1950년대 수출은 땅 속에서 찾아낸 광물과 바다 속에서 건진 수산물이 고작이었다. 광물은 미국에, 수산물은 일본에 팔았다. 중석 등 광산물이 그 무렵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80%였다. 그리고 일본에 마른오징어, 김 등 수산물을 수출했다. 당시 우리가 팔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수출했다. 돼지, 다람쥐, 뱀, 은행잎은 물론 머리카락을 자르고 오줌을 받아 수출했다.

농산물(명주실, 쌀, 인삼 등)이 광산물을 누르고 수출 주종품목이 된 건 1962년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농수산물 위주의 수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이를 해결할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이를 가공하여 다시 수출하는 길뿐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보세가공산업을 적극 지원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실을 들여와 보세지역에서 직물을 생산하고 이를 갖고 봉제의류를 만들어 수출했다. 한 때 이를 몰래 반출하여 시중에서 파는 보세의류가 큰 인기를 모았었다.

그 뒤 이러한 가공산업이 발전하여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라디오와 TV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여 수출하는 전자제품 조립산업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자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부품수입이 늘어나 대일 무역적자가 1980년대 35억 달러에서 1990년대는 1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렇게 대일 무역적자가 증가하자 일본의 한 경제평론가는 우리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 부르며 비하했다. 가마우지라는 새는 훈련을 시키면 고기를 잡아오는데, 어부는 새가 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목을 끈으로 묶어 놓는다. 어부가 고기를 뺏고 나서 풀어주면 다시 고기를 잡아오는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부품과 기계를 사들여 조립해 만든 상품이 주종을 이루다보니 수출로 해외에서 돈을 벌어와 봐야 부품 값 갚고 기계 값이나 기술료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한국은 알짜 부가가치는 일본에 상납하고 조금씩 떨어지는 먹이나 주어먹고 사는 가마우지 경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뒤에도 대일 무역적자 증가세는 멈추지 않았다. 2000년 113억 달러에서 가파르게 증가하며 힘들게 벌어들인 달러를 일본에 퍼주는 액수는 마냥 커져갔다. 2010년에는 361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0년을 기점으로 대일 적자규모가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2018년 대일 무역적자는 240.8억 달러였는데 그 중 151.3억 달러가 부품소제 분야였다.

이러한 대일 무역적자의 대부분은 부품소재 때문이다. 우리의 반도체산업, IT산업, 기계류산업, 자동차부품산업이 모두 일본 부품소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첨단품목 수출이 늘어날수록 일본으로부터의 부품수입은 증가한다.

일본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경제적 정한론(征韓論·한국정벌 주장)’이 회자되고 있었다. 부품소재분야에서 일본기업들이 한국과의 거래를 일제히 끊을 경우, 실제로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각한 것은 한국이 세계 1등을 차지하는 분야일수록 일본 부품·소재 의존도가 더 높다는 사실이다. 세계1위 품목인 반도체를 비롯하여 TV,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우리기업들이 세계 시장 1, 2위하는 시장일수록 일본기업의 부품소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다. 이외에도 많은 분야에서 일본기업이 부품소재 공급을 중단하면 우리기업들이 매우 곤란한 처지에 처하는 실정이다.

우리가 부품소재산업이 자립할 수 있어야 진정한 극일을 이룩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동안은 오랜 타성 등 여러 이유로 부품소재산업 자립이 어려웠다. 그러던 것이 이번 아베의 도발로 우리기업과 정부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 내부적으로 부품소재산업 자립의 당위를 인정하면서도 그간 제대로 합의를 모으지 못했는데 아베 덕분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전화위복이다.

 

 

2. 정밀부품소재 자립도 높여야/ 최소 50% 이상 국산 쓰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예전에 수출 초창기에는 수입대체품목 개발이 곧 애국이었다. 그만큼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수입대체품목 개발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선 품질을 미더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기업은 우리 중소기업이 부품소재를 개발하면 가격인하로 대응하면서 초기에 싹을 자르곤 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잘 써오던 일본산 부품소재를 국산개발품으로 바꾸다가 불량률이 높아지면 그 책임을 누가 지려고 하겠는가? 그러다보니 안정적인 공급처의 물량에 안주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기업도 부품소재 수입 통로 다변화를 위한 플랜B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상식정도는 알고 있다. 부품소재 공급을 한 개 기업에만 맡겨서는 비상시에 곤란할 수 있다는 상식 말이다. 수입처를 두세 군데로 나누어 경쟁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오랜 기간 일본 부품소재에 만족해 왔기 때문이다. 그만한 품질에 그만한 가격도 없었다.

이번에 거론된 3개 품목도 우리기업들이 생산 못하는 품목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기업의 점유율이 70~90%을 웃돌았다. 우리기업들의 수입대체 개발품목을 키워주지 않은 결과였다.

감광액(Photoresist)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Display) 공정에서 모두 쓰이는 소재인데, 일본의 TOK와 JSR, 미국 Dow Chemical 등에서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동진쎄미켐과 금호석유화학, SK머터리얼, LG화학 등에서 만들고 있다. 특히 동진쎄미켐은 1993년 감광액을 국산화했고 삼성전자가 지분투자까지 했기에 유사시 조달이 가능하나 문제는 초고순도 제품 개발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 분야 일본산 점유율이 무려 90%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이 이번에 수출규제 하겠다는 감광액은 고밀도 차세대 반도체제작(EUV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제품으로 아직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 감광액이다. 이 규제는 133조를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을 주력으로 삼겠다는 삼성전자 앞날에 재를 뿌리는 전략으로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찰나에 그 맥을 끊어버릴 수도 있다. 이는 최첨단산업 주도권을 한국기업들에 내주면 세계 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과 국가경쟁력 약화를 우려했기 때문에 한국 견제전략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불화 폴리마이드(Fluorine Polyimide)는 일본의 스미모토(Sumitomo)에서 주로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SKC코오롱PI, SK이노베이션에서 만들 수 있다. 이도 일본산의 점유율이 90% 이상이다.

반도체 식각에 쓰이는 불산(HF)은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파내는 Etching(식각)이라고 하는 공정에 쓰이는 맹독성 액체다. 우리나라 업체로는 후성, SK머티리얼즈, 원익머티리얼즈, 솔브레인 등 몇 군데가 있고, 대만에서는 Formosa에서 만든다. 하지만 일본산 불산의 우리네 시장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러시아가 이를 공급하겠다고 나서 일본이 다소 당황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규제는 이들 품목들이 기존의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에서 개별 수출허가 대상으로 전환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일본기업들이 이들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선 계약 건당 정부의 허가와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9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수출이 불허될 수도 있다. 이른바 ‘인위적 수출장벽’이다.

어떤 의미에선 이런 규제를 자초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우리 대기업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들의 개발과 납품을 반기지 않았던 그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최소 50% 이상의 국산 부품소재를 쓸 수 있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더구나 이는 대중수출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 중국과는 현지에 진출한 우리기업에 보내는 부품소재들이 우리 대중수출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중국기업들에는 우리 부품소재들이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중국기업들에도 우리 부품소재를 수출하려면 이 분야에서 한 번 더 도약해야 한다. 부품소재산업이야말로 일본으로부터의 자립과 중국시장 공략이라는 1석2조의 분야이다.

 

 

3. 현실적으로는 치밀하게 대응해야

 

이번 일이 전회위복의 기회라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한일 간 경제 갈등이 오래 지속되거나 더 악화되어서는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특히 국민감정을 부추겨 노골적인 반일 행동이 표면화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럴수록 냉정해야 한다.

이번 일본정부가 발표한 초강수 한국 수출규제는 우리기업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겠지만 동시에 일본 측 공급 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제품들이다. 일본정부가 경제보복을 무작정 장기화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가측 변수에 대비해 우리기업과 정부는 내부적으로 결의를 다지더라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 정치 외교적 마찰이나 양국 간 경제보복의 악순환이 증대되어서는 이로울 게 없다. 삼성전자가 소재 조달과 비상경영계획 수립을 위해 바삐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는 조용한 이유이다.

정부와 기업은 향후 일본의 경제보복 확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일본의 한국 반도체산업 견제 움직임에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미국의 잠재적 동의가 있었다면 일본의 규제가 더욱 학대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다음 달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의 백색국가 대우에서 제외되면 1100여 개 전략물자 확보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향후 경제규제 가능 소재별 비상경영계획을 세워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차적으로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적 화해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은 러시아, 대만, 중국 등 거래선 다변화를 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 확충작업을 전력 지원해야 한다. 우리 모두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