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반발하고 있는 미국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지재권) 갈등을 풀기 위해 웨스팅하우스 측으로부터 기자재 등 원전 설비를 공급받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그동안 '체코에 수출할 원전은 100% 국산 기술'이라며 물러설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웨스팅하우스 측의 '몽니'에 결국 국내 기업이 만든 설비 대신 미국 회사 설비를 가져다 쓰는 상황에 처한 것.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체코 정부를 향해 원전 수출 본계약 성사를 위한 설득 작업을 벌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와 한수원이 서둘러 상황 정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받은 답변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체코 원전 건설 과정에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때처럼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설비 공급' 등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산업부는 "현재 한국전력‧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지재권에 대해 입장 차가 있다"면서도 "UAE 바라카 사례와 같이 설비 공급 등에서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수원 또한 "현재 소송 및 분쟁이 진행 중이지만 바라카 사례처럼 협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15년 전 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할 때도 정부는 비슷한 방법으로 고비를 넘겼다. 웨스팅하우스는 2009년에도 지재권 침해를 주장하다 철회했는데 당시 정부와 한국전력이 원자로 냉각재펌프와 터빈 기자재 등 주요 부품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구매하는 조건으로 웨스팅하우스의 항의를 무마했다. 웨스팅하우스 입장에서는 지재권 침해 주장의 목적이 결국 '돈'이었는데 한국에 부품을 팔아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돼 마지못해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주요 부품을 팔면서 가져간 돈은 약 2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는 총 186억 달러 규모였다.
그러나 이번 체코 원전의 경우 바라카 원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정부에 따르면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APR1000 원자로는 원전 설계 핵심 코드, 냉각재 펌프,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등 3대 핵심 기술을 국산화해 100% 우리나라 독자 기술만으로 원전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정부와 한수원은 이를 근거로 그동안 웨스팅하우스 측의 공격에도 "우리는 논리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바라카 원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자재 등 일부 설비를 공급받는 조건으로 웨스팅하우스와 협력을 하겠다는 것을 두고 여러 의문이 쌓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해 말 내년 초로 예정된 본계약을 앞두고 결국 웨스팅하우스와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상황이 꼬일 수 있다는 조급함에 설익은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원전 수출에 사활을 거는 마당에 '원천 기술 침해'를 주장하는 웨스팅하우스의 발목 잡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값 덤핑으로 수주 땄는데, 그나마도 미국한테 뜯기고 나면 적자수주
돈은 미국이 벌고
일은 우리 기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