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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질병·성폭력 등 시달리다 죽어서야 공장문 나서기도 소년들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주로 군수공장·탄광산 끌려가

“나는 강원도 평강군 현내면에 살았습니다. 벼를 타작하면 일본 순사들이 와서 싹 쓸어가 살기가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요. 어느 날 학교 마치고 집에 갔는데 순사하고 아버지가 마당에 서 있었어요. 아버지가 만주 보국대로 징용 간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보낼 수 없어 내가 대신 가겠다고 했습니다. 기차 타고 가는 내내 울었어요. 그때 내 나이 9살이었습니다.”

1931년생인 옥순 할머니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방적공장으로 징용됐다. 전국에서 징용된 또래 소녀들과 함께 실을 만드는 일을 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면 식당에 가서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그러면 무 껍질, 수박 껍질 같은 게 나왔어요. 그걸 주워서 잘 씻어서 언니들이랑 나눠 먹었습니다. 껍질을 구하지 못하면 소금으로 배를 채우다 설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개나 돼지도 그렇게는 안 먹일 겁니다.”


https://news.v.daum.net/v/20190801060104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