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초 혼다의 레젼드라는 모델이 미국시장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데뷔하자, 대우에서는 중/대형 세단의 강자자리를 현대의 쏘나타와 그랜져에게 빼앗긴후에 레젼드라는 모델을 도입하게 되지요.
국내에서는 아카디아로 판매가 되었는데, 국내 자동차 법규상 60% 이상의 내수부품 수급율을 맞추지 못한 유일한 차종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우면서 강인한 차체와, 높은 주행성능, 그리고 훌륭한 핸들링과 뛰어난 내구성때문에 오너들의 만족이 대단히 컸던 차종중의 하나이지요. 다만 93년 데뷔당시에 책정된 4300만원이라는 가격은 지금 물가 기준으로 보면 약 9천여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99년 단종될때까지 1만여대 밖에 팔리지 않게된것은 오로지 외형상의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권위적이고 중후함의 이미지가 보이는 뉴그랜져(LX)에 비해서, 아카디아는 날렵하고 날씬하게 빠졌기 때문에 스포티한 감각에선 월등히 우위에 서지만 품격이라는 관점에는 최고급 대형세단이라면 크고, 풍채가 당당해야한다는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것이 가장 큰 핸디캡이었습니다.

게다가 뒷자리 전용차가 아닌 오너드리븐 성향이 매우 강했기때문에, 사장님석 보다는 운전석위주로 설계되어있는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하겠지요. 하지만, 자동차를 그런 외형과 품격을 보지않고, 기계적인 측면에서 보는 매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할만큼 매력적인 차종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너무도 높은 가격때문에 구매층이 극히 제한되었다는것이 안타까운 점이지요.

아카디아에 탑재된 혼다의 V6 3.2리터 24밸브 SOHC 엔진은 가변흡기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회전 밸런스가 아주 우수하고, 성능이 뛰어납니다. 싱글캠 이지만 한쪽으로 캠을 설계하고, 다른쪽 밸브는 푸쉬로드를 밀어서 구동하는 방식으로, 흔히 생각하는 고회전 토크가떨어진다는 상식을 깨버린 엔진이지요. 이 가변흡기 방식을 대우에서 리엔지니어링을 통해서 기술을 획득하게 되고, 혼다에서는 기술이전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대우는 승용 전차종에 가변흡기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로스 마력으로는 220마력을 발휘하지만, 네트로 환산하게 되면 205마력 수준으로 예상되고, 스펙상 그랜져 3.5와 비슷한 엔진출력이지만 전반적인 주행성능과 품질은 그랜져 3.5을 한참 웃도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랜져 3.0 의 제로백이 약 12초 정도를 내는데, 아카디아는 자동변속기임에도 불구하고 8초 초/중반으로 현재 투스카니 엘리사와 비슷한 수준의 제로백 성능을 내고 있지요. 이는 G-thech로 측정한 실측수치 입니다.

아카디아의 주행성이 돋보이는 점은 고속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서 4단에서 3단으로 킥다운되었을때 돋보입니다. 파워풀한 엔진에 매칭이 잘된 높은 3단기어비로 인해서 3단 6000rpm에서 시속 165까지 가속하는데, 이 가속력은 일품입니다. 현재 2리터급 자동변속기 사양과 비슷한 수준의 기어비인것이지요. 따라서 4단에서 시속 100으로 주행하다가 3단으로 킥다운하여 가속하면 본넷이 번쩍 들리면서 미친듯이 가속이 시작됩니다. 물론 4단은 항속을 위한 기어비로 설정되어 3단에서 4단으로 넘겨받으면 그 경쾌한 가속이 한풀 꺽이는것이 아쉽습니다.

미국의 Bayou의 튜닝 ECU를 장착하게 되면, 제로백을 8초 안으로 당길수가 있고, 쿼터마일은 15초까지 당겨올수가 있습니다. 그랜져 3.0의 가속은 엑센트 1.5 수동의 초반가속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 가속력이 최고속에 도달할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것이 대배기량 엔진이운전자에게 주는 여유로움인것이지요.

아카디아는 구지 비교를 하자면 엘리사 정도의 초반가속이 최고속까지 꾸준히 지속된다는 쪽으로 해석하시면 그 동력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서 감이 오실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랜져 3.5 로는 3.0에 비해서 배기량이 500cc 늘어났지만, 증가된 배기량으로 엔진출력이 50마력이상 상승하지 않는한, 동력성능쪽에서보면 그랜져는 아카디아에 비해서 열세를 보입니다.

그저 차량을 선택하는 기준이 엔진출력에만 국한된다면 아카디아보다 더 뛰어난 차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차체의 설계구조와 엔진 및 변속기간의 밸런스 측면에서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한국의 자동차 만들기 철학과 기술력은 일본에 비해서 10년이상 뒤쳐진 느낌뿐이지요. 그만큼 혼다가 기술적으로 시대에 걸맞지 않게 많이 발전해있다라는 쪽으로 해석되도 될듯 하네요.

아카디아의 엔진은 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엔진이 후륜구동 처럼 세로배치(종치식) 되어있습니다. 전륜구동은 엔진을 가로배치(횡치)하는것이 설계도 편하고, 정비성도 좋고, 구조적으로 많은 부분에 잇점이 있습니다. 가로배치 하는 이유는 엔진내부의 피스톤은 왕복운동을 하지만 결국 이 왕복운동은 회전운동으로 바뀌게 되고 엔진의 출력은 플라이휠에서 나옵니다. 이 플라이휠의 회전력을 변속기가 적절한 기어단수로 토크를 증대하여 각 구동축에 전달하게 되지요.

전륜구동은 앞바퀴가 구동까지 담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양쪽 앞바퀴의 회전중심을 가상으로 축을 그려본다면 그 축선상에 엔진의 출력단의 회전축의 중심과 변속기 회전축의 중심이 모두 하나의 직선위에 위치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전륜구동으로는 이상적인 전후무게배분 50:50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엔진과 변속기의 그 축을 최대한 뒤로 위치한다면 불리한 무게배분을 조금이라도 줄일수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아카디아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독특한 변속기를 설계하여 해결했습니다. 엔진을 세로배치(후륜구동처럼)하여 최대한 뒤쪽에 두고, 역삼각형의 중앙에 위치한 변속기를 설계하여 구동축은 앞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오버행이 짧아지게 되어, 차체의 회두성이 좋아지게되고 차체의 길이를 길게하지 않고도 축거를 넓게 설계하여 고속 차체 안정성을 높히게 될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앞바퀴의 위치가 엔진의 위치에 의해서 제약을 받지 않기때문에, 서스펜션의 설계구조에 제약을 받지않아서 더블위시본으로 설계하였고, 캐스터각이 상당히 큽니다. 이러한 캐스터각이 크면 얻어지는 잇점은 향상되는 직진주행 성능입니다. 기복이 심한 노면에서도 효과적으로 직진안정성이 좋아져서 핸들링 측면으로보면 매우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오는 또하나의 잇점은 등속조인트의 길이가 좌우 동일하다는것입니다. 가로배치형 엔진들은 어쩔수없이 등속조인트의길이가 좌우가 다르지요. 예를들어 엔진이 조수석앞에 있다면 변속기는 운전석앞에 위치하게 되고 운전석쪽 등속조인트는 짧고, 조수석쪽 등속조인트는 길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좌우의 길이가 다른 등속조인트는 급가속을 할때 각각의 비틀림 강성의 차이에서 오는 토크스티어 현상이 전혀 없습니다. 토크스티어란 출발시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을때 변속기에서 나오는 토크는 동일하게 나오지만, 등속조인트의 길이에 따라서 비틀림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어 덜 비틀리는쪽에 더 빠르게 토크가 전달되어 조수석에 엔진이 위치한 경우라면 차체가 왼쪽으로 쏠리게 되지요.

이러한 토크스티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게 동일한 길이의 등속조인트가 사용되어야 하며, 이는 변속기의 형상으로 상당부분 억제할수가 있습니다. 크레도스와 스쿠프 터보는 변속기에 추가로 드라이브 샤프트를 설치하여 실제로 등속조인트의 좌우길이가 동일합니다.

아카디아는 이러한 구조적인 잇점으로 인해서 완벽한 전후 50:50의 무게배분은 아니지만, 55:45라는 혁신적인 무게배분을 실현했습니다.
현재 생산되는 전륜구동의 무게배분이 약 70:30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수치인것이지요. 또한가지 돋보이는 점은 변속기의 변속품질입니다. 수동변속기 사양은 국내에서 판매량이 10대에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동변속기 사양이지만, 변속기의 내구성이 상당한 수준에 있으며, 구조가 수동변속기에 근접하게 설계되어 변속충격이 적고, 변속시간이 매우 빠릅니다.

차체는 현재 판매되는 차들과 비교해도 우위를 보일만큼 강한차체를 가지면 대부분 아연도금을 채택하여, 10여년이 지난 지금 굴러다니는 아카디아를 봐도, 차체에 녹슨부분이 없다는점은 매우 큰 장점이 되지요. 대중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가격대의 차가 아니었고, 많이팔린차가 아닌데다가... 혼다의 기술이 그대로 숨어있다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켜서 마치 스포츠카처럼 생각하는 부분도 매우 많이있습니다.

하지만 태생이 대형세단인만큼 축거가 너무 길어서 고속에서 민첩한 핸들링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회전반경이 짧은 연속코너에서는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다른 대형세단에 비해서 서스펜션이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더블위시본에 이상적인 무게배분이라 할지라도, 서킷과 같은 복합코너에서는 어쩔수없이 소형세단보다 둔한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다만 동급의 전륜구동인 그랜져(LX)가 보여주는 엄청난 언더스티어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주행성능이지만요....

아카디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서킷과 같은 복합코너는 너무 좁습니다. 즉 양의 탈을 쓴 대형세단들을 평가할때 서킷과 같은 복합코너에서 평가하는 방식은 그차의 50% 도 채안되게 이해하는것과 같습니다. M5나 RS6, E55 AMG 등 이러한 세단들로 서킷을 누비고 다니면서 평가하기에는 서킷은 너무도 좁지요...

차체와 엔진 및 변속기의 내구성이 엄청나게 좋은 반면에 다른 부품들이 일정한 주행거리에 도달하면 꼭 문제를 발생시키는 고질병이 있고 (9만킬로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 15만킬로 밸브가이드....) 그 부품의 수급이 원할하지 않은것이 문제점입니다. 혼다에서 대우
에 기술이전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정비자체를 받기가 매우 힘들었고, 낮은 판매량과 맞물려서 99년 IMF를 맞으면서 29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세일을 끝으로 마감된 비운의 차종중의 하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