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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 스포츠 / 댄스 - 포토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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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URN OF THE KING 울산 모비스 양동근
양동근(28)이 돌아왔다. 왕의 귀환이다. 예전 그 모습 그대로다. 얼굴에는 안면 가득 여유가 넘쳤지만, 눈에서는 독기가 서려있었다. 2년간의 공백.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07년 겨울. 울산 모비스의 화려한 시절은 양동근의 군 입대와 함께 사라졌다. 모비스는 2005-2006시즌과 2006-2007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농구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양동근과 김동우의 군 입대와 외국인선수 영입 실패로 2007-2008시즌 정규리그 9위로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모비스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던 양동근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김학섭과 하상윤이 양동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섰지만, 게임 운영이나 리더십에 있어서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모비스는 2008-2009시즌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둬내며 명문의 자존심을 살렸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모비스는 군에서 제대한 김현중과 프로 2년 차 박구영이 포인트가드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냈고, 김효범도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하면서 양동근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팀을 이끌었다. 여기에 외국인선수 브라이언 던스톤과 프로 2년 차 함지훈이 골밑을 지켜내며 다크호스를 넘어 정규리그 1위라는 드라마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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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를 탄 모비스의 지난 두 시즌은 군에서 제대를 앞둔 양동근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소속 팀의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양동근은 만감이 교차했다. 모비스가 하위권에 맴돌았을 때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내가 없어서…’라는 생각에 의욕이 생기기도 했지만, 최고의 분위기로 똘똘 뭉쳐 우승을 차지한 다음에는 기쁨과 동시에 말 못할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제대를 하고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양동근의 속내에 궁금증이 생길 만 하다. 양동근은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상무에서 장기 지원?
24개월의 복무 기간 동안 양동근은 프로에서의 명성 그대로였다. 양동근은 저돌적인 골밑 돌파와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이는 전형적인 공격형 가드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별명도 이 때문에 지어졌다. 2004-2005시즌 신인상과 수비5걸에 이름을 올린 양동근은 군 입대를 하기 전 2005-2006시즌부터 2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고, 모비스가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06-2007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MVP의 영예에 오르기도 했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별명답게 혜성처럼 나타나 프로 무대를 평정한 것이다. 프로에 이어 상무 소속으로 뛰던 아마 무대 역시 양동근의 활약은 여전했다. 제대를 앞둔 지난해 12월 상무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까지 차지했고, 대학 최강 중앙대에게 쓰라린 연장 패배를 안긴 주역이 됐다.
제대 후 만난 양동근은 3~4kg 정도 몸이 불었다고 하지만, 육안으로는 2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그의 공백이었다. 들려오는 대답에 부담감이 묻어 나왔다. “제 공백이 있었나요? 모비스가 워낙 잘해서….” 대신 군 생활에 있어서는 여유가 넘쳤다.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군대 체질인가? 한 번은 가 볼만 하죠. 제겐 너무 소중한 추억입니다.” 양동근은 군 제대 후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제대를 실감하기 시작했다고. “처음에는 휴가 나온 느낌이었는데, 복귀한다는 생각 없이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아, 제대 했구나’라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양동근은 상무에 있으면서 남모를 마음고생이 많았다. 어린 대학 선수들을 상대로 프로 출신 선수라는 부담감이 그를 더 조였다.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까 마음이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도 되고 부담감도 많았죠. 그래도 지나고 나니까 재밌었던 것 같아요.” 특히, 중앙대를 상대로는 더 했다. 상무에는 이원수를 비롯해 김도수와 조성민 등 가드와 포워드는 풍부했지만, 확실한 센터가 없었기 때문. “중앙대는 강했어요. 이병과 일병 때 중앙대에 지고 나서 선수들 불러놓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이러면 안 된다’고요. 또 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이기자고 각오를 다졌죠.”
양동근은 선수들을 끌어 모아 훈련 외적인 시간에 추가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야간 운동도 자처했다. “부담이 많았던 거죠. 다행히 선수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서 똘똘 뭉쳐 마지막에 결과가 좋게 나온 것 같아요.” 양동근은 2008 농구대잔치 준결승에서 중앙대를 만나 27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결정적 활약으로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상무를 결승 진출로 이끌었고, 결국 우승까지 맛봤다.
상무 시절 양동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발목이었다. 양동근은 2007년 12월 오른쪽 발목 연골재생수술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에 쏟아 부어야 했다. 걱정이 된 것은 당장 상무가 아닌 제대 후 프로였다. 다른 선수들은 상무에서 입대 전 모자란 부분 훈련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양동근은 재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제가 발목 수술한 것은 잘 모르더라고요. 예전의 몸 상태로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부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특별한 훈련보다는 보강 운동과 재활, 체력적인 훈련에 대부분을 투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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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앞두고 모비스의 선전을 지켜본 그의 속내를 물었다. “당연히 이기는 게 좋죠. 질 때는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이니까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김)효범이나 (함)지훈이나 어린 선수들인데 챙겨주지도 못하고요.” 그러면서도 주위에서 농담 섞인 부담감을 팍팍 줬다고. “‘이제는 내가 없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주위에서도 농담으로 ‘너 가면 뭐 하냐? 그냥 상무에서 장기 지원해라’, ‘구단에서 너 프런트 자리 알아보고 있더라’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나는 낀 세대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 양동근이 갑자기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오는 복학생의 마음 때문일까. 양동근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KBL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국인선수제도는 자유계약에서 트라이아웃으로 바뀌었고, 하승진의 등장으로 신장 제한도 철폐됐다. 그 사이 황금세대의 프로 데뷔와 함께 대어급 신인들도 두 시즌 동안 상종가를 쳤다. 게다가 2009-2010시즌부터 3점슛 거리와 페인트 존도 새롭게 바뀌고, 혼혈선수들도 5명이나 신고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쯤 되니 양동근도 프로의 변화된 제도,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의 등장에 겁이 날만도 했다. “저는 항상 도전과 경쟁을 해야 하는 세대예요. (이)상민이 형과 (문)경은이 형 한창 때 저희 세대가 신인이었죠, 또 저희가 군에 가 있는 동안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들어 왔죠. 우리 세대는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치이는 낀 세대라니까요.”
양동근이 없는 사이 KBL의 대세는 서울 SK로 이적한 주희정이었다. 양동근은 주희정과 황금세대 신인들을 라이벌이 아닌 배워야 할 상대로 표현했다. “희정이 형은 저보다 잘 하잖아요? 저는 부담이 없죠. 그냥 따라가는 입장이니까요. 문제는 희정이 형이 너무 열심히 한다는 거죠. 따라가려면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신인급 선수들도 다 제가 따라가야 할 선수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겸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누구보다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다른 팀 가드보다 드리블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양동근은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혼혈선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양동근은 이미 1순위로 KCC행을 결정지은 토니 애킨스와 상무 시절 맞상대를 해본 경험도 있다. 물론 연습경기의 특성상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한 경기 내용은 아니었지만, 양동근에게 애킨스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박혀 있었다. “잘해요. 실제로 힘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거의 외국인선수 수준이던데요? 더구나 하승진이 있는 KCC로 가게 됐으니, 걱정이네요.” 애킨스에 대해 겸손하게 치켜세우던 양동근은 자신감 역시 내비쳤다. “열심히 해봐야죠. 자신감은 항상 넘쳐요. 다만, 자만심이라고 오해를 받을 까봐 걱정이죠. 자만심이 생기면 바로 무너지는 거잖아요? 초심을 잃지 않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양동근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군 복무 시절 농구공에 ‘초심(初心)’이라고 직접 새기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농구공에 대해 묻자 민망했는지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효범이가 이거 보면 또 자기 따라했다고 난리칠 텐데….”
대표팀 ‘No.7’… 꽃범호와 약속!
양동근이 제대 신고식을 화끈하게 치르게 됐다. 프로 무대가 아닌 국제대회다. 대한농구협회(KBA)는 지난 5월 11일 남자농구대표팀 12명 명단을 발표했다. 양동근도 당당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교롭게 대표팀 발표가 있는 날 양동근의 표지 촬영이 있었다. 현장에서 소식을 들은 양동근은 “국가가 부르면 당연히 달려가야죠”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양동근에게 있어 대표팀은 특별하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 단계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며, 곧바로 치러진 2006-2007시즌 모비스를 통합챔피언으로 이끌어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독식했다. 군 제대와 함께 대표팀을 시작으로 프로 무대 복귀를 준비 중인 양동근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인 셈. 그러나 양동근은 의욕과는 달리 한 없이 겸손했다. “저는 대표팀에서 분위기를 죽이기만 해요. (김)승현이 형이 분위기를 띄우면 제가 소방관 역할을 했던 거죠. 선배 형들과 함께 뛰며 밥 먹는 것만으로 영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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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은 대표팀에서 유독 ‘등번호 7’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 “대표팀에 들어가자마자 ‘7번은 내 꺼’라고 외칠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 양동근은 결국 학창시절부터 프로까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6번 대신 7번을 다는데 성공했다. 그래도 불안한지 “유니폼에 이름이 찍혀 나와 봐야 알죠”라고 말하며 다른 선수들의 눈치를 봤다. 양동근이 ‘등번호 7’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꽃범호’라 불리는 한화 이글스 이범호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양동근은 지인의 소개로 이범호와 친분을 쌓기 시작해 현재는 친구로서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사이. 이범호는 지난 3월 전 국민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주인공. 이범호는 WBC에서 자신의 등번호 7번 대신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을 달고 맹활약했다. 양동근도 이에 질 수 없었다. “친구가 6번 달고 잘 했는데, 저도 대표팀에서 7번을 달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양동근은 군 입대 전 야구동호회에서 활동한 것은 물론 상무 시절에도 야구를 보는 것뿐 아니라 직접 즐기는 야구광. “제대하기 전날에도 야구장에서 현역 사병들과 야구를 하고 왔어요. 콜드게임으로 5회에 끝내버렸죠. 아마 상무에서 야구부를 제외하고 농구부가 가장 야구를 잘 할 거예요.” 상무 내 야구 포지션도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노경석은 1선발, 한정원은 2선발이에요. 김도수가 마무리라고 우기는데 정말 못해서 차라리 감독이 낫죠. 이원수와 조성민은 수준급이에요. 전 유격수와 3번 타자를 주로 맡았죠.” 양동근의 말만 듣고 있으면 농구는 물론 야구에서도 MVP감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부담 때문에 현기증까지
모비스에 대한 다음 시즌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팀의 주축이었던 양동근과 김동우의 공백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 양동근에게 이런 기대감은 고스란히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우승한 건 정말 축하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일 났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담이 플러스알파로 너무 많아 현기증이 날 정도예요.” 양동근의 부담이 가장 큰 이유는 팀 분위기였다. 젊은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우승을 일궈낸 지난 시즌 팀 분위기에 혹시라도 누가 될까 하는 마음 때문. 게다가 돌풍의 주역이었던 박구영은 군 입대를 했고, 김현중도 LG와 모비스 사이에서 아직 입지가 확실히 정해진 상황이 아니다. 박구영과 김현중의 공백을 홀로 메워야 할 입장이 된 것. “현중이와 구영이가 해줬던 부분과 제가 해야 할 부분이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장단점이 있긴 하겠지만, 또 새롭게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될 지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김효범과 함지훈의 호흡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미 깊은 신뢰와 친분이 쌓여 있기 때문. “효범이와 같이 뛰면 시너지 효과가 훨씬 좋을 겁니다. 효범이가 2번(슈팅가드)을 보고, 제가 1번(포인트가드)을 맡으면 서로 부담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요. 서로 도와줘야죠.” 김효범은 양동근이 복귀하는데 가장 부담을 주는 요주 인물 중 한 명이다. “무조건 형만 믿고 뛰겠다고 하던데, 자기 짐을 덜려고 하는 거죠. 하하. 지난 시즌보다 못하면 농구 그만 두라고 제가 농담을 던지기도 했죠. 제가 효범이보다 선배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니까요.”
양동근은 함지훈과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2007년 한일 챔프전 당시 함께 뛰어 본 경험도 있고, 삼선중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후배 함지훈에 대한 돈독한 친분도 과시했다. “제가 중학생 때 지훈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완전 똥돼지였어요. 게임도 못 뛰어서 농구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즐기면서 했던 게 지금 잘 하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지훈이가 이런 얘기하면 저한테 ‘형도 완전 작았잖아요’라고 맞받아치니까요.” 함지훈 역시 양동근과 함께 뛸 생각에 “동근이 형이 워낙 게임을 재밌게 하기 때문에 다음 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져요”라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양동근은 김현중과 브라이언 던스톤에 대해서도 줄줄이 말을 이었다. 동갑내기인 김현중과는 상무 시절 “군 생활을 같이 1년 더하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단짝. “둘이 함께 뛸 때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현중이가 저 때문에 더 재밌었겠지만요. 서로 고민거리도 많이 얘기하며 도움을 주는 사이였죠. 만약에 LG로 가게 되면 더 잘해서 좋은 모습 보였으면 좋겠어요. 모비스에 있으면 제 자리가 없어지니까요. 하하.” 던스톤에 대해서는 함께 우승을 이끌어 낸 크리스 윌리엄스와 비교했다. 모든 면에서 윌리엄스와 비슷하다는 것이 양동근의 설명이다. “윌리엄스는 발에다 패스를 줘도 잘 잡는다고 할 정도로 캐치가 좋았거든요. 던스톤도 그럴 것 같아요. 상무와 모비스가 연습경기를 많이 했었는데, 수비가 좋아서 골밑을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저 선수 정말 좋다’라는 생각밖에 안 했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기대하고 있어요.”
팀원들에 대해 장황하게 칭찬을 늘어놓다가도 양동근은 불청객이라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나 보다. “어린 후배들이 잘 해놓은 것을 제가 망치지는 말아야죠. 친하긴 해도 운동을 같이 한 선수는 효범이 뿐이니까요. 제가 망치는 것도 일가견이 있거든요. 하하. 흐름이 안 깨지게 잘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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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는 지난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의 노련미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하고 3승을 내줬다. 양동근도 플레이오프를 관전하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양동근이 구심점 역할을 하며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 “경험은 정말 무시 못 하죠. 제가 있을 때도 삼성에게 챔프전에서 완패하고 나서 그 다음해 통합우승을 차지했잖아요. 이번 경험으로 다음 시즌 더 좋은 성적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24개월 만에 군복을 벗어던지고 모비스 유니폼을 갈아입은 양동근. 넘치는 자신감보다 겸손이 몸에 밴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기대와 부담감이 오히려 젊은 선수들을 이끌 팀의 리더로서 또 다른 도전을 해야 할 시기다.
“한편으론 2년 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겁도 나지만, 설레고 긴장돼요. 얼마 전 뉴스에서 이승엽 선수가 ‘이제 제 자리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던데, 저도 제 자리를 찾고, 다시 한 번 우승하러 가러고요. 그 때 다시 웃어야죠.”
양동근을 있게 해준 아내의 내조
군 입대를 일주일 앞둔 2007년 5월. 양동근은 한양대 체육학과 동기 김정미(29)씨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결혼 생활도 양동근의 군 복무 기간에 맞춰 어느덧 24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첫 아기도 4개월이 됐다. 결혼 후 신혼 생활도 제대로 느끼게 해주지 못한 양동근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집에 갑자기 무슨 일이 있어도 못 가고, 아내가 밤에 아파도 옆에서 챙겨주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해요. 이제부터 정말 신혼인 거죠.” 하지만, 양동근은 아내에게 신혼 생활을 채 느끼게 해주기도 전에 또 대표팀에 발탁됐다. “대표팀에 뽑힐 줄은 몰랐죠. 나라에서 부르는 건데 가야죠. 누군가 저를 원할 때는 정말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내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요.” 아내 김정미 씨의 내조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유명했다. 양동근은 “아내가 없었으면 대학 졸업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양동근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아내의 내조는 여전했다. “워낙 가정적이라서 평소에 잘 해줘서 괜찮아요. 또 대표팀 때문에 떨어져 있지만, 별로 서운한 것은 없어요. 영광인 걸요.” 양동근이 프로 데뷔 이후 상무에서까지 꾸준히 잘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내의 내조가 가장 큰 힘이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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